국내 유일·최장수 단관 ‘광주극장’ 국가유산 된다
국가유산청,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예고
1935년 문 열어…日강점기부터 문화공간
1935년 문 열어…日강점기부터 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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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2(월) 19:59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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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이 12일 국내 유일의 최장수 단관극장인 ‘광주극장’을 국가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사진은 광주극장 내·외부 모습. <광주극장 제공> |
국내 유일의 최장수 단관극장인 ‘광주극장’이 국가유산으로 등재된다.
국가유산청은 12일 광주극장을 비롯해 구 유유산업 안양공장(공장동·연구동·수위실), 구 대전공회당, 제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비행기 격납고 등 4곳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
광주극장은 1935년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법인이 개관한 극장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조성됐다. 이후 90여년간 지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으며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단관극장이라는 점에서 희소성 등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국가 차원에서 인정받게 됐다.
등록예고된 장소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충장로 46번길10 건물 1동(지하 1층-지상 4층)으로 건축면적 999.4㎡, 연면적 2천264.85㎡ 규모다.
현존 건물은 1968년 화재 이후 재건축됐지만, 그 과정에서 작성됐던 기록들에서 당시 건축적 정황들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상하층 객석, 영사공간, 곡선형 처마를 중심으로 한 전면 파사드에서 당시 극장건축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광주극장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가운데 하나다.
일제강점기 전남광주의 여러 극장이 일본인 경영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상황에서 유은학원 설립자 최선진이 지역의 조선인과 자본을 모아 광주극장을 건립했다. 전남광주가 읍에서 부로 승격된 1935년 10월1일 문을 열었고, 1천2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극장으로 출발했다. 지역민이 세운 문화시설이라는 점에서 광주극장은 개관 당시부터 특별한 상징성을 지녔다.
초기에는 영화 상영뿐 아니라 창극과 판소리, 연극, 음악 공연 등이 열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소개하며 민족의식을 이어갔고, 해방 이후 김구 강연회와 음악회, 연극제 등을 개최해 지역의 문화·교육과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1968년 화재 이후 재건축한 건물이 현재까지 이어지며 몇 차례 내부 정비를 거쳤지만 광주극장은 오랜 시간 단관극장의 구조와 분위기를 지켰다. 좁은 출입구와 하나의 넓은 상영관은 현대적 상업 영화관과는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상영작의 장면과 인물을 직접 그려 건물 외벽에 내거는 대형 영화 간판의 전통을 이어가며 광주극장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2000년대 이후 복합 상영관의 확산과 폐쇄 명령, 지원 중단 등 여러 위기를 겪었음에도 독립 영화와 예술 영화, 고전 영화를 꾸준히 상영하며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극장 곳곳에 건립 당시의 사진과 영화, 공연 기록, 입장권 장부, 영사기와 안내판, 아나운서의 상영 멘트 노트 등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의 영화 검열을 보여주는 임검석을 비롯한 자료는 광주극장 자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영화박물관처럼 만든다.
정행웅 학교법인 유은학원 이사장은 “1935년 유은 최선진 선생께서 일제의 혹독한 식민 지배 속 조선인들이 차별 없이 전통 공연과 영화를 만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광주극장을 세웠다”며 “광주극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키던 무대였다. 또 해방과 한국전쟁, 1980년 광주의 아픔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희로애락을 품어온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자본과 효율의 논리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동안 광주극장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지역민과 관객, 예술가들의 애정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독립·예술영화를 품는 문화 터전이자 시민들의 배움과 쉼터로서 다음 세대에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함께 등록 예고된 옛 유유산업 안양공장(공장동·연구동·수위실)은 1950년대 말 형성된 제약분야 산업시설로 사회적·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옛 대전공회당은 현재 지방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제강점기 공회당 건축물로 희소성을 인정받아 선정됐다.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는 ‘제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비행기 격납고’로 명칭을 변경하고, 일제강점기 전쟁 관련 군사시설이라는 유산의 특성과 이력을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기존 격납고 10기에 8기를 추가 등록 예고했다.
/오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