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별-맨드라미’

‘느린 풍경-유정길’

짙은 푸른빛 밤길을 걷는 사람과 그 위로 가득 차오른 하얀 보름달의 모습이 보인다. 여러 차례 겹쳐 올린 깊은 색감, 그리고 단조롭지만 감각적인 먹선이 조화를 이루며 우리에게 따스한 위로를 안겨준다.

남도 수묵의 정신을 바탕으로 전통 한국화의 미학을 재해석해온 장흥 출신 한국화가 김선두의 개인전이 열려 눈길을 끈다.

전남도립미술관은 내년 3월22일까지 지역작가 기획전 일환으로 ‘김선두 초대전 - 색의 결, 획의 숨’을 진행한다.

남종 문인화 거목인 소천 김천두 화백의 장남이기도 한 그는 1980년 이종상 화백에게 산수화와 장지 기법을 배우며 작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1984년 제7회 중앙미술대전 대상 수상을 계기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선두의 그림은 전통 한지인 장지 위에 동양화 분채와 안료를 혼합한 색을 수십차례 반복해 쌓아 올리는 독자적인 기법이 특징이다. 겹겹이 축적된 색은 깊은 결을 형성하며 수행과 사유의 흔적이자 ‘시간의 결’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 ‘색의 결, 획의 숨’은 이러한 조형적 특성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색은 시간을 머금은 결을 이루고, 획은 그 시간 속에서 남겨진 호흡과 움직임을 드러낸다.

이는 김선두 회화의 핵심 미학이다. 전통 재료와 기법을 기반으로 하되 이를 동시대적 감각과 조형 언어로 확장해 온 작가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시는 연대기적 구성에서 벗어나 그의 삶과 경험, 사유의 흐름을 따라 4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섹션 ‘모든 길이 노래더라’에서는 남도 풍경 속 자연의 감각과 서정을 담아냈다. 두 번째 섹션 ‘그거이 달개비꽃이여’는 들꽃 이미지에 깃든 강인한 생명력을 조명한다. 이어 고향의 대지와 삶의 속도에 대한 성찰을 담은 세 번째 섹션 ‘사람다운 길은 곡선이라야 한다’, 한국화의 동시대적 의미와 미래 가능성을 모색하는 마지막 섹션 ‘우리 그림을 위하여’가 차례로 펼쳐진다.

대형 신작 ‘밤길’ 시리즈를 포함해 고향에 대한 기억과 남도 자연 풍경에서 비롯된 ‘남도’ 시리즈, ‘낮별’, ‘느린 풍경’, ‘지지 않는 꽃’, ‘아름다운 시절’ 등 주요 연작들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김선두가 지닌 문학 감수성도 엿볼 수 있다. 그는 같은 고향 출신인 소설가 이청준과 30여년에 걸친 깊은 예술적 교류를 이어오는 등 오랜 시간 문학인들과의 협업을 지속해온 바 있다.

전래동화를 각색한 소설에 삽화를 그리거나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 표지화를 제작하면서 대중적 인지도 또한 확장해왔다.

‘내게 시는 지난한 붓질의 이유이자 원동력’이라고 언급할 만큼 시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전시장 내에는 ‘시와 그림’을 매개로 한 참여형 공간이 마련돼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그의 회화는 남도의 땅을 걸으며 마주한 삶과 자연, 그 속에 깃든 정서를 ‘길’이라는 서사적 모티프로 풀어낸다”며 “작품을 따라가듯 감상하며 수묵이 드러낸 길의 의미와 그 안에 담긴 삶의 정서를 탐색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