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512)
윤기 없는 머리가 새로운 머리 비춰질까 꺼리구먼
2023. 08. 01(화) 19:27 가+가-
鑷白髮(섭백발) / 외재 이단하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서릿발 알리는데
천여줄기 흰머리 뽑기 옥 손가락 바빠
머리가 새로운 머리에 비쳐질까 꺼리네.
佳人忽報鬢邊霜 鑷盡千莖玉脂忙
가인홀보빈변상 섭진천경옥지망
垂向固知非惡事 却嫌華髮照新粧
수향고지비악사 각혐화발조신장

윤기 없는 머리가 새로운 머리 비춰질까 꺼리구먼

인생 사십대가 되면서 하얀 머리가 듬성듬성 나온다. 손가락으로 뽑아도 보고, 족집게로 뽑아도 보지만 뽑기가 바쁘게 또 차고 오르는 세치는 더욱 억센 기세를 자랑한다. 해마다 오르는 숫자는 많아지고 결국 흰머리 뽑는 일을 중단하지 아니 할 수 없다. 뽑는 속도와 자라는 속도를 더 이상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사람이나 갑자기 서릿발 알리고, 천여줄기 흰머리를 뽑느라 공연히 옥 손가락만 바빴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윤기 없는 머리가 새로운 머리에 비춰질까 꺼리구먼(鑷白髮)으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외재(畏齋) 이단하(李端夏: 1625-1689)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송간(松磵)으로도 쓰인다. 대사성을 지내다 숙종 즉위 후 2차 복상문제로 숙청된 의례 제신 처벌의 부당함을 상소한 죄로 파직됐던 인물이다. 1680년(숙종 6) 경신출척으로 풀려났다가 벼슬은 우의정에 이르렀다.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아름다운 사람이나 갑자기 서릿발 알리고 / 천여줄기 흰머리 뽑느라 옥 손가락 바쁘네 // 고개를 드리우고 가려냄은 악한 일이 아니지만 / 윤기 없는 머리 새로운 머리에 비춰질까 꺼리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백발을 뽑으면서’로 번역된다. 집안 내력으로 말미암아 30대부터 흰머리가 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40-50대가 되면 귀밑머리부터 희끗희끗 흰머리가 기승을 부린다. 처음 흰머리가 날 때에는 족집게 등으로 흰머리를 뽑는다. 막내 아이나 손주들 몫으로 맡기면서 흰머리 뽑아 줄 것을 부탁한다. 처음엔 따갑기도 하지만, 제법 시원해 가끔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시인은 젊었을 때 검은 머리에 제법 멋을 부렸던 아름다운 정경을 생각해 보는 시상 속에 숨어있는 시주머니는 넉넉해 보인다.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갑자기 서릿발을 알리고 있는데, 천여 줄기 흰머리를 뽑느라고 옥 손가락이 바쁘다고 했다. 가족에게 흰머리 뽑기를 맡기지 않고 손수 뽑았음을 보이는 시상이다.

시인은 화자의 입을 빌어 ‘너도 내 나이되어 봐라’는 말을 잊어버린 듯이 너털웃음 웃으며 손수 귀밑머리를 뽑았음을 보인다. 고개를 드리우고 흰머리 가려내는 일이 악(惡)한 일은 아니지만, 윤기 없는 머리가 새로운 머리에 비춰질까 꺼린다고 했다. 윤기 없는 머리가 새로운 흰 머리에 비춰질까 두렵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했다.

※한자와 어구
佳人: 아름다운 사람. 忽報: 갑자기 알리다. 鬢邊: 귀밑털 가. 霜: 서리. 鑷盡: 족집게 다 뽑다. 千莖: 천 줄기. 玉脂: 옥 손가락. 忙: 바쁘다. // 垂向: 고개를 드리우다. 固知: 진실로 알다. 非惡事: 나쁜 일이 아니다. 却嫌: 문득 꺼리다. 華髮: 화려한 머리털. 照新粧: 새로운 머리에 비춰지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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