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마주하다
미리 가본 광주미술관 국제 하이퍼리얼리즘 기획전 ‘실재와 환영의 미로’展
국내외 하이퍼리얼리즘 작가 14인 회화·조각 등 100여점
4년간 붓질 쌓인 소나무숲부터 실물 같은 인체 조각까지
정밀 재현 작품 통해 관람객에 ‘실재란 무엇’ 질문 던져
국내외 하이퍼리얼리즘 작가 14인 회화·조각 등 100여점
4년간 붓질 쌓인 소나무숲부터 실물 같은 인체 조각까지
정밀 재현 작품 통해 관람객에 ‘실재란 무엇’ 질문 던져


- 재생 준비중
2026. 10. 13(화) 19:31 가+가-
전시장 벽에 비닐 포장을 미처 벗기지 않은 작품이 걸려 있었다. 그림 위를 절반 가까이 뒤덮은 투명한 비닐이 영 거슬렸다.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어 봐도 비닐 특유의 주름과 광택이 선명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비닐의 끝자락이 보이지 않았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비닐까지 전부가 그림이었다.
한 걸음 물러섰다 다시 다가갔다. 멀리서 사진처럼 완벽한 현실로 보였던 작품은 가까이서 보니 조명에 반사된 화판의 비침을 통해 정교한 묘사의 흔적이 드러났다.
13일 찾은 광주미술관 본관 제1·2전시실. 14일 개막을 앞둔 국제 하이퍼리얼리즘 기획전 ‘실재와 환영의 미로’는 관람객의 눈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전시였다.
눈앞에 있는 것이 실재인지 환영인지 분간하기 어려웠고 익숙한 사물이 낯설게 다가왔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를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국내외 작가 14명의 회화와 조각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울산 전시에서 일부 작가와 작품 구성을 달리했다. 국내 작가 강형구와 안정환 등이 참여하면서 전시의 폭을 넓혔다.
또 다른 작품 앞에서는 시간의 무게가 울림을 전했다. 안정환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대작 ‘고요한 소나무숲’이다. 울산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품으로, 작가가 무려 4년에 걸쳐 완성했다. 소나무는 결마다 수만 번의 붓질이 겹겹이 쌓여 오랜 작업의 흔적은 물감의 두께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가까이에서는 붓질의 층위가, 멀리서는 고요한 숲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극사실주의 작품은 이처럼 두 번의 감상을 요구한다.
전시를 총괄 감독한 황혜진 ㈜우인 대표는 “멀리서 마주하는 순간에는 실제와 다름없는 정교함에 놀라고, 가까이 다가서면 그 이미지를 완성하기까지 쌓인 시간과 노동에 다시 놀라게 된다. 사진이나 AI 출력물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회화 특유의 깊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인간의 신체를 재현한 조각 작품들도 시선을 끌었다. 할리우드 특수분장 분야에서 활동했던 샘 징크스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극도로 사실적인 인체 조각으로 표현한다. 피부의 미세한 주름과 머리카락, 신체의 질감까지 정교하게 구현한 작품은 살아 있는 사람을 마주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작품을 오래 바라볼수록 눈길이 머무는 것은 정교한 기술보다 인간의 나약함과 내면이다.
아카데미 분장상을 두 차례 수상한 카즈 히로의 조각 역시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허문다. 실제 인물이 눈앞에 존재하는 듯한 정밀한 묘사는 조각이라는 매체의 표현 가능성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극사실주의를 단순한 재현의 기술이 아닌 하나의 미학적 언어로 풀어낸다는 데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사진조차 담아내기 어려운 미세한 질감과 감각을 구현하며 현실의 재현을 넘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냈지만 국내에서 기술적 완성도로만 평가받는 경우가 많았다. 대상을 똑같이 그린다는 이유로 ‘잘 그린 그림’이라는 평가에 머물렀다.
하지만 4년 동안 한 폭의 소나무숲을 완성한 안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복제와는 거리가 멀다. 수없이 반복된 붓질에는 작가가 대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며 고뇌한 시간이 축적돼 있다. 완성된 이미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회화의 본질이 그 안에 담겼다.
윤익 광주미술관장은 “극사실주의를 미술 자체의 언어를 확장하려는 시도로 바라봤다. 색과 면, 입체와 크기, 시간성 등 기존 미술의 표현 영역을 넘어 인간이 어디까지 창조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특히 AI가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어내는 시대, 하이퍼리얼리즘은 수년에 걸친 아날로그적 작업을 통해 ‘다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윤 관장은 “하이퍼리얼리즘은 현실을 가장 정교하게 재현하면서 동시에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미술”이라며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며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오가는 특별한 시각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의 마지막에는 거울로 꾸며진 미러룸이 마련됐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그림과 조각을 지나 마침내 마주한 것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환영을 통과한 끝에 비로소 실제의 자신과 마주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 역시 하나의 이미지였다. 전시는 광주미술관에서 내년 2월14일까지.
/오복 기자
오복 기자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어 봐도 비닐 특유의 주름과 광택이 선명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비닐의 끝자락이 보이지 않았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비닐까지 전부가 그림이었다.
한 걸음 물러섰다 다시 다가갔다. 멀리서 사진처럼 완벽한 현실로 보였던 작품은 가까이서 보니 조명에 반사된 화판의 비침을 통해 정교한 묘사의 흔적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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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미술관에서 국제하이퍼리얼리즘 기획전 ‘실재와 환영의 미로’가 개막에 앞서 13일 기자 프레스투어를 진행했다. 사진은 ‘첫번째 미로 : 압도적인 실재’를 관람하는 모습./오복 기자 |
13일 찾은 광주미술관 본관 제1·2전시실. 14일 개막을 앞둔 국제 하이퍼리얼리즘 기획전 ‘실재와 환영의 미로’는 관람객의 눈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전시였다.
눈앞에 있는 것이 실재인지 환영인지 분간하기 어려웠고 익숙한 사물이 낯설게 다가왔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를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국내외 작가 14명의 회화와 조각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울산 전시에서 일부 작가와 작품 구성을 달리했다. 국내 작가 강형구와 안정환 등이 참여하면서 전시의 폭을 넓혔다.
또 다른 작품 앞에서는 시간의 무게가 울림을 전했다. 안정환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대작 ‘고요한 소나무숲’이다. 울산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품으로, 작가가 무려 4년에 걸쳐 완성했다. 소나무는 결마다 수만 번의 붓질이 겹겹이 쌓여 오랜 작업의 흔적은 물감의 두께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가까이에서는 붓질의 층위가, 멀리서는 고요한 숲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극사실주의 작품은 이처럼 두 번의 감상을 요구한다.
전시를 총괄 감독한 황혜진 ㈜우인 대표는 “멀리서 마주하는 순간에는 실제와 다름없는 정교함에 놀라고, 가까이 다가서면 그 이미지를 완성하기까지 쌓인 시간과 노동에 다시 놀라게 된다. 사진이나 AI 출력물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회화 특유의 깊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는 인간의 신체를 재현한 조각 작품들도 시선을 끌었다. 할리우드 특수분장 분야에서 활동했던 샘 징크스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극도로 사실적인 인체 조각으로 표현한다. 피부의 미세한 주름과 머리카락, 신체의 질감까지 정교하게 구현한 작품은 살아 있는 사람을 마주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작품을 오래 바라볼수록 눈길이 머무는 것은 정교한 기술보다 인간의 나약함과 내면이다.
아카데미 분장상을 두 차례 수상한 카즈 히로의 조각 역시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허문다. 실제 인물이 눈앞에 존재하는 듯한 정밀한 묘사는 조각이라는 매체의 표현 가능성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극사실주의를 단순한 재현의 기술이 아닌 하나의 미학적 언어로 풀어낸다는 데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사진조차 담아내기 어려운 미세한 질감과 감각을 구현하며 현실의 재현을 넘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냈지만 국내에서 기술적 완성도로만 평가받는 경우가 많았다. 대상을 똑같이 그린다는 이유로 ‘잘 그린 그림’이라는 평가에 머물렀다.
하지만 4년 동안 한 폭의 소나무숲을 완성한 안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복제와는 거리가 멀다. 수없이 반복된 붓질에는 작가가 대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며 고뇌한 시간이 축적돼 있다. 완성된 이미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회화의 본질이 그 안에 담겼다.
윤익 광주미술관장은 “극사실주의를 미술 자체의 언어를 확장하려는 시도로 바라봤다. 색과 면, 입체와 크기, 시간성 등 기존 미술의 표현 영역을 넘어 인간이 어디까지 창조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특히 AI가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어내는 시대, 하이퍼리얼리즘은 수년에 걸친 아날로그적 작업을 통해 ‘다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윤 관장은 “하이퍼리얼리즘은 현실을 가장 정교하게 재현하면서 동시에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미술”이라며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며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오가는 특별한 시각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의 마지막에는 거울로 꾸며진 미러룸이 마련됐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그림과 조각을 지나 마침내 마주한 것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환영을 통과한 끝에 비로소 실제의 자신과 마주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 역시 하나의 이미지였다. 전시는 광주미술관에서 내년 2월14일까지.
/오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