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짜 일 줄이기’라는 화두를 던졌다. 실적을 부풀리는 관행, 보여주기식 보고, 실체 없는 성과 포장. 공공 영역 곳곳에 만연한 ‘가짜 노동’을 줄이겠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흐름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치에도 ‘가짜 일 줄이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정치에서의 가짜 일은 무엇일까. 실행 가능성 없는 공약을 남발하는 일, 이미 예정된 사업을 마치 본인의 성과인 것처럼 포장하는 일, 보여주기식 간담회와 사진만 남기는 현장 방문, 책임지지 않는 말들, 그리고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실패를 덮는 태도까지. 형태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정치인이 부지런하게 일은 하고 있지만, 정작 시민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지 정치인의 태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짜 일이 반복될수록 행정은 비효율로 굳어지고, 시민은 정치에 무관심해지며, 결국 민주주의의 토대인 신뢰가 무너진다. 정치가 시민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는 체념이 사회 전반에 퍼질수록, 그 빈자리는 극단과 혐오가 채운다. 정치는 스스로의 신뢰를 깎아먹으며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가 ‘성과를 만드는 일’보다 ‘성과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말은 앞서가고, 현장은 따라오지 못했다. 공약은 넘쳐났지만, 완수된 약속은 손에 꼽혔다. 그 사이 시민들의 신뢰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닳아왔다.

광주에서 의정활동을 하며 이 문제를 더욱 절실하게 느껴왔다. 20년 넘게 멈춰 있던 양동시장역 외부 엘리베이터 설치, 수년간 논의만 반복되던 광주천 생태하천 복원, 지역 상권과 교통, 안전 문제들. 이들 대부분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책임있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 없어서 지연된 사안들이었다. 정책은 있었지만 추진력이 없었고, 계획은 있었지만 완수의 주체가 부재했다.

정치에 ‘가짜 일 줄이기’가 도입된다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평가 기준이다. 무엇을 얼마나 발표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실제로 바꾸었는가를 묻는 정치. 얼마나 많은 예산을 따왔느냐가 아니라, 그 예산이 시민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따지는 정치. 그리고 실패했을 때는 변명보다 책임을 먼저 말하는 정치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남는 정치’가 아니라 ‘일이 남는 정치’다. 회의 횟수가 아니라 해결된 문제의 숫자로 평가받는 정치, 숙의 기간의 길이가 아니라 얼마나 깊고 진지하게 토론했는지로 평가받는 정치, 홍보물의 두께가 아니라 시민의 체감도로 평가받는 정치, 그리고 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정치 현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장면 중 하나가 ‘아침 산악회 인사’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정치인의 필수 코스”라 말하고, 누군가는 “보여주기식 정치의 상징”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문제는 산악회에 인사를 가느냐, 가지 않느냐가 아니다. 그 자리가 ‘사람을 만나기 위한 자리’인지, ‘사진을 남기기 위한 일정’인지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불편함을 메모하고, 이후 행정과 의정 활동으로 연결된다면 그것은 분명 정치다. 하지만 인사만 하고 돌아서며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연출이 된다.

정치에서의 가짜 일은 거짓말이 아니라, 바로 이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바쁨’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시민은 생각보다 정확하다. 누가 진짜로 듣고, 누가 지나쳐 가는지 오래지 않아 알게 된다.

정치가 다시 신뢰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가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용기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삶을 바꾸기 위해 존재한다. 말이 아니라 결과로, 이미지가 아니라 책임으로, 그렇게 한 걸음씩 신뢰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 가짜 성과를 줄이고, 진짜 일을 늘리는 정치. 그것이 지금 우리 정치에 도입돼야 할 가장 중요한 개혁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