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먼의 미국, 우리의 한국 / 천세진
- 재생 준비중
2025. 12. 28(일) 18:18 가+가-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2025년은 미국을 다시 본 시간이었지만 미국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건 아니다. 1918년 우드로 윌슨(1856-1924)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으나, 필리핀-미국 전쟁(1899-1902) 중 필리핀인들 100만 명이 죽었고, 필리핀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46년이었다. 하와이를 비롯한 여러 민족은 아직도 자결과 반대의 처지에 있다. 이전에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일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월트 휘트먼(1819-1892)의 시집 『풀잎』(1855)을 좋아하지만, 읽을 때마다 심경이 복잡해진다. 휘트먼은 『풀잎』 서문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미국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지구상의 모든 국민들 가운데 미국인들이 가장 완벽한 시적인 본성을 지닌다고 할 것이다. 미합중국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다.” 같은 문장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쇼비니즘이 가득 찬 찬사만 있는 건 아니다. “시민정신의 거대함과 관대함이 상호 교류하지 않으면 국민성의 거대함은 괴물과 같은 것이 된다.” 같은 경계의 말들도 들어있다.
휘트먼의 찬사는, 미국이 벌인 숱한 폭력과 학살의 역사를 알고 있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분명 과도하고 균형을 잃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노예제, 원주민 학살 같은 악행의 역사를 고려하면, 미국에 대한 휘트먼의 이해는 현실을 외면한 낙관주의와 국수주의로 읽히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왜 그런 찬사를 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에 쓴 찬사를 단순한 국수주의적 찬양이나 역사적 사실을 외면했다는 사실만 부각해 평가하기보다는 19세기 중반 미국이 처해 있던 특수한 역사·사상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855년의 미국은 정치적으로 미완의 국가였고, 독립 이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유럽의 왕정과 귀족적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회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상태였다. 남북 간의 갈등은 심각했고, 노예제 문제는 내전(1861-1865)으로 비화할 긴장을 안고 있었다. 휘트먼은 그런 불안정한 시기에 미국을 이미 완성된 국가로 찬미하기보다 완성돼야 할 가능성을 지닌 나라로 노래했다. 찬사는 현실의 미국이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국을 향한 희망의 언어에 가까웠다.
단호하게 희망을 걸어야 했던 미국은 최강국이 됐다. 하지만 완벽한 시적인 본성을 가진 것 같지도 않고 본질적으로 위대한 시 같지도 않다. 악마적인 시정잡배의 본성만 드러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시적인 나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떤가? 월트 휘트먼의 말을 변용해 “지구상의 모든 국민들 가운데 한국인들이 가장 완벽한 시적인 본성을 지닌다고 할 것이다. 한국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다.”라고 해보자. 음악, 음식, 드라마, 영화, 문학…. 한국의 여러 문화적 면면들이 지구인들의 감성 속에 깊이 각인되고 있는 세태를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무력이 아니라 문화라면 시라고 불러도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뭔가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를 살아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휘트먼은 시가 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구와 태양과 동물을 사랑하고… 질문하는 모든 이에게 시혜를 베풀며… 누구에게도 모자를 벗지 않으며… 가족들의 어머니들과 자유롭게 다니고… 당신 자신의 영혼을 욕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배척하라. 그러면 당신의 바로 그 몸이 위대한 한 편의 시”가 된다고.
다른 나라들에 비친 한국이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한국을 보면, 시적인 본성은 지닌 것 같지만 시 자체인 나라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 휘트먼이 한 편의 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구현된 나라가 아니다. 전세·금융 사기와 보이스피싱, 폭력과 살인, 음주 범죄자들과 정치인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한 나라다. 영혼을 욕되게 하더라도 돈만 벌면 그만이고, 질문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피해자들과 어머니들의 절규에는 귀를 막는 나라다.
휘트먼의 미국은 실현된 적이 없다. 미국이 그런 지경이라고 해서 미완의 한국에 대한 찬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나라이니 가능성을 완성형으로 만들기 위해 가혹할 정도로 많이 노력해야 한다.
월트 휘트먼(1819-1892)의 시집 『풀잎』(1855)을 좋아하지만, 읽을 때마다 심경이 복잡해진다. 휘트먼은 『풀잎』 서문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미국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지구상의 모든 국민들 가운데 미국인들이 가장 완벽한 시적인 본성을 지닌다고 할 것이다. 미합중국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다.” 같은 문장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쇼비니즘이 가득 찬 찬사만 있는 건 아니다. “시민정신의 거대함과 관대함이 상호 교류하지 않으면 국민성의 거대함은 괴물과 같은 것이 된다.” 같은 경계의 말들도 들어있다.
왜 그런 찬사를 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당시에 쓴 찬사를 단순한 국수주의적 찬양이나 역사적 사실을 외면했다는 사실만 부각해 평가하기보다는 19세기 중반 미국이 처해 있던 특수한 역사·사상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855년의 미국은 정치적으로 미완의 국가였고, 독립 이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유럽의 왕정과 귀족적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회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상태였다. 남북 간의 갈등은 심각했고, 노예제 문제는 내전(1861-1865)으로 비화할 긴장을 안고 있었다. 휘트먼은 그런 불안정한 시기에 미국을 이미 완성된 국가로 찬미하기보다 완성돼야 할 가능성을 지닌 나라로 노래했다. 찬사는 현실의 미국이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국을 향한 희망의 언어에 가까웠다.
단호하게 희망을 걸어야 했던 미국은 최강국이 됐다. 하지만 완벽한 시적인 본성을 가진 것 같지도 않고 본질적으로 위대한 시 같지도 않다. 악마적인 시정잡배의 본성만 드러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시적인 나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떤가? 월트 휘트먼의 말을 변용해 “지구상의 모든 국민들 가운데 한국인들이 가장 완벽한 시적인 본성을 지닌다고 할 것이다. 한국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다.”라고 해보자. 음악, 음식, 드라마, 영화, 문학…. 한국의 여러 문화적 면면들이 지구인들의 감성 속에 깊이 각인되고 있는 세태를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무력이 아니라 문화라면 시라고 불러도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뭔가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를 살아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휘트먼은 시가 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구와 태양과 동물을 사랑하고… 질문하는 모든 이에게 시혜를 베풀며… 누구에게도 모자를 벗지 않으며… 가족들의 어머니들과 자유롭게 다니고… 당신 자신의 영혼을 욕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배척하라. 그러면 당신의 바로 그 몸이 위대한 한 편의 시”가 된다고.
다른 나라들에 비친 한국이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한국을 보면, 시적인 본성은 지닌 것 같지만 시 자체인 나라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은 휘트먼이 한 편의 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구현된 나라가 아니다. 전세·금융 사기와 보이스피싱, 폭력과 살인, 음주 범죄자들과 정치인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한 나라다. 영혼을 욕되게 하더라도 돈만 벌면 그만이고, 질문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피해자들과 어머니들의 절규에는 귀를 막는 나라다.
휘트먼의 미국은 실현된 적이 없다. 미국이 그런 지경이라고 해서 미완의 한국에 대한 찬사를 그만둘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나라이니 가능성을 완성형으로 만들기 위해 가혹할 정도로 많이 노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