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산불’ 연습 모습.

전쟁 이후 공동체에 남겨진 상처와 억눌린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한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 ‘산불’이 광주 무대에 오른다. 광주 출신 극작가 고 차범석의 명작을 같은 지역의 배우들이 무대화하며, 호남 연극의 뿌리와 동시대적 의미를 함께 되짚는다.

(사)한국연극배우협회 광주광역시지회(이하 광주연극협회)는 제20회 정기공연으로 차범석의 ‘산불’을 오는 19-20일 이틀간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선보인다. 전석 무료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지역 연극인들이 한마음으로 참여한 순수 제작 공연으로 마련됐다.

‘산불’은 전쟁 이후 남성들이 사라진 산골 마을에 외지 청년이 들어오면서, 억눌려 있던 욕망과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전쟁이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남긴 균열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인간 본성과 사회적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한 문제작으로 평가받는다. 국어 교과 과정과 수능, 연극영화과 입시 지정작품으로도 꾸준히 다뤄져온 만큼, 작품 자체가 지닌 교육적 의미도 크다.

이번 무대는 특히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세대를 아우르며 참여해 작품의 정서와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과서와 시험지 속 텍스트로 접해온 작품을 실제 무대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을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만나는 자리다.

작가 차범석(1924-2006)은 목포 출신으로 중·고등학교 시절을 광주에서 보낸 지역 출신 연극인이다. 한국 현대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 교육자로 활동하며 제7대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했다. ‘산불’을 비롯해 ‘귀향’, ‘청기와 집’, ‘열대어’, ‘장미의 성’ 등은 전후 한국 사회의 현실과 인간의 본질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폭넓게 논의되고 있다.

광주연극협회는 광주에서 활동하는 연극 배우들을 중심으로 권익 보호와 교육, 창작 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단체다. 작품 제작과 공연을 통해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한편, 워크숍과 세미나 등을 통해 배우들의 전문성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이솔 광주연극협회 회장은 “우리 지역이 낳은 위대한 극작가의 작품을 협회 이름으로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다. 전쟁 속에서 선택할 수 없었던 이들의 삶을 오늘의 무대 위에서 다시 비추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이번 공연이 광주 연극의 정체성과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