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호남진흥원이 개원 8년 만에 한국학 자료 10만점을 돌파하며 호남 한국학 연구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독립 청사와 전문 수장고 없이, 전북도는 물론 광주·전남 상생 협력도 충분히 이행되지 못한 여건에서 이룬 성과라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한국학호남진흥원(원장 홍영기·사진)은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멸실·훼손 위기에 놓인 한국학 자료 1만4천455점을 추가 확보해 누적 수집 자료가 10만1천696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국학진흥기관 소장 규모를 보면 한국국학진흥원이 68만여점, 한국학호남진흥원이 10만1천여점,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4만9천여점, 율곡국학진흥원이 2만9천여점 순이다. 한국학호남진흥원은 짧은 기간에 전국 두 번째 규모의 소장 기관으로 올라섰다.

진흥원에 따르면 10만1천696점 가운데 고문서가 1만3천여점, 고서가 2만2천여책에 이른다. 이밖에 근·현대 문헌, 사찰 자료, 유물, 서화 등 다양한 유형의 자료가 복합적으로 수집돼 있다.

지역별로는 전남도 자료가 73%, 광주 자료가 약 20%, 전북도 자료가 4.4%, 서울·경기·충청 등 자료가 2% 안팎을 차지한다. 진흥원 측 설명에 따르면 광주 자료 상당수도 원래 전남 문중에 보관돼 있던 것들이 도시화 과정에서 광주로 옮겨온 경우가 많아, 사실상 전남권 자료 비중이 90% 이상이다.

자료를 기탁·기증한 문중·기관·개인은 현재까지 약 140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기탁이 120곳, 기증이 16곳, 대여가 4곳으로, 건수 기준으로 기탁 비중이 약 80%, 기증이 12%대다.

현재 한국학호남진흥원이 보유한 문화유산 자료는 전남도 유형문화유산 1천676점, 광주시 유형문화유산 18점, 전남도 문화유산자료 265점, 향토문화유산 132점 등 총 2천91점이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 목록에는 호남을 대표할 만한 중요 자료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1389년 무학대사가 간행한 불경사전 ‘장승법수’와 1434년 발급된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 무과 합격증서 ‘김수연 왕지’는 각각 고려 말·조선 초 불교사와 조선 초기 과거제 문서 체계를 보여주는 대표 자료다.

고봉 기대승과 퇴계 이황의 왕복 편지를 묶은 ‘양선생문답첩’, 수은 강항의 일본 포로 기록 ‘간양록’ 등도 있다.

1756년 작성된 한글 조리서 ‘음식보’, 호남 의병장 박광전이 스승인 퇴계 이황에게 직접 받은 ‘주자서절요’, 실학자 위백규의 ‘환영지’ 목판과 초안 등은 호남의 생활문화·의례·학문 풍토를 보여주는 자료로 연구 가치가 높다.

사진 위로부터 ‘음식보’, ‘간양록’, ‘환영지 초본과 목판’, ‘주자서절요’.

진흥원은 10만점 달성을 기념해 이날 간담회와 함께 소규모 전시도 마련했다. ‘양선생문답첩’을 비롯해 ‘김수연 왕지’, ‘음식보’, ‘환영지’ 목판과 초안 등 향후 문화유산 지정 가능성이 높은 자료를 중심으로 엄선했다.

진흥원 측은 “보물로 지정될 수 있는 자료가 서너 점 정도 있다고 보고 있다”며 “내년 중 관련 자료만 따로 추려 학술 집담회를 열고 객관적 평가를 거친 뒤 시·도와 협력해 문화재 등재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홍영기 원장은 “10만 점을 모으는 동안 민간의 귀중한 자료가 얼마나 빠르게 사라질 수 있는지 현장에서 절감했다”며 “현재 수장 공간이 2-3년 내 포화가 예상되는 만큼 독립 청사와 전문 수장고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호남 한국학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지자체와 함께 해법을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