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안에 석류꽃이 마구 뚝뚝 지는 날, 떨어진 꽃이 아까워 몇 개 주워 들었더니 꽃이 그냥 지는 줄 아나? 지는 꽃이 있어야 피는 꽃도 있는 게지 지는 꽃 때문에 석류알이 굵어지는 거 모르나? 어머니, 어머니, 지는 꽃 어머니가 나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시고, 그나저나 너는 돈 벌 생각은 않고 꽃 지는 거만 하루 종일 바라보나? 어머니, 꽃 지는 날은 꽃 바라보는 게 돈 버는 거지요 석류알 만한 불알 두 쪽 차고앉아 나, 건들거리고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창비, 2005)

[시의 눈]

화무십일홍이요, 인불백일호라 했다. 열흘 내내 붉은 꽃이 있겠는가? 사람이 백일 동안 늘 좋을 수만 있겠는가? 한번 불꽃처럼 성하면 또 한번은 쇠함이 자연의 법칙인 것을. 눈 시리게 화면을 채웠던 꽃잎, 인연의 시간을 보내고 하염없이 뚝 뚝 떨어진다. 그 꽃잎을 밟고 아쉬움 마냥 깨물 일은 아닌 것을. 지는 꽃들이 귀띔한다. 한 때의 부귀영화, 그것이 존재의 본원이 아니란 것을. 지는 꽃이 있으면 피는 꽃도 있다는 것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안다. 생성과 소멸, 그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그러므로 자연 앞에서 교만하여 거들먹거릴 일도, 상심하여 의기소침할 일도 아닌 것이다. 뜨락에 진 석류 꽃잎이 투명한 눈짓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툭 던진 어머니 말씀은 우주의 섭리이다. 지는 꽃 때문에 석류 알이 굵어지는 우주의 신비와 생명력, 이 일깨움은 은근히 피부로 감지되는 전율이다. 순수의 아름다움이 지상에 뒹구는 날, 이를 목격한 자아는 불화를 겪는다. 그러나 일거에 갈등과 불화를 너스레와 웃음으로 전환시키는 언어의 힘은 어디서 온 걸까? 진지하고 심각한 상황을 가벼운 분위기로 바꿔놓은 것은 영혼의 성숙과 존재론적 전환이다. 낙화와 개화, 그 간격과 틈새가 연출한 놀라운 미학이다. 심각하면서도 유쾌한 한국적 여유다.
<윤삼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