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 빈 의자 달랑 남겨놓고
머나먼 길 떠나신 큰스님 계신 곳
아무 때나 부를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오늘도 무소유 오솔길 오른다

‘인생을 낭비한 죄’ 짓지 마라
조용히 들려오는 임의 말씀
만나러 가는 길 어찌하면
그 말씀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
(시집 ‘아내의 詩集’·청어·2020)

[시의 눈]

인생의 여행 가방을 가득 채워 끙끙대며 떠날 것인가, 가방 무게를 최소화해 홀가분히 떠날 것인가? 이 물음은 거대한 짐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사뭇 필요한 물음으로 다가온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나 존재냐’를 통해 현대사회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설득력있게 해부한 바 있다. 그것은 깨달음의 질문이었다. 물질 추구와 소비 중심의 사회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왔던가, 인간관계는 나날이 계산적이고 수단적인 것으로 심화 왜곡 되진 않았는가 하는 성찰과 진단에 수긍하게 되는, 그리고 소유의 욕망이 궁극적으로 모두를 행복하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게 됐다. 이런 사회적 조류가 더 큰 힘을 타고 있음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같은 맥락에서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통해 묻고 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보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중요함을 설파했다. 필요없는 것들을 비움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경험적 논리는 인간관계를 회복시키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복원시키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불일암, 법정 스님이 머물던 도량이다. 침묵의 소리, 영혼의 모음이 나직히 흐르는 무소유 길을 이남섭 보성 시인과 더불어 동행하게 해주는 공감의 시다. <윤삼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