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살던 김신혜(47·여)씨가 사건 발생 24년 만에 억울함을 풀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박현수 지원장)는 6일 존속살해와 사체유기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 판결받은 김씨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는 김씨가 불출석한 상태서 이뤄졌다.

김씨는 지난 2000년 3월7일 완도군 완도읍에서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탄 양주를 먹여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기소 전 수사 단계에서 김씨는 경찰서를 직접 찾아 ‘자수’했다. 자백 내용은 자신과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양주에 수면제 30알을 타 ‘간에 좋은 약’이라고 먹였다는 것이었다.

범행 전 김씨가 아버지를 계약자로 한 다수의 보험에 가입했다는 점도 계획 범죄 정황으로 꼽혔다.

김씨의 자백과 정황 등을 바탕으로 검찰은 그가 범행 후 사체유기까지 했다고 판단하며 기소했다.

1심 재판부였던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김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 2000년 8월31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김씨의 항소와 상고가 줄줄이 기각돼 1심 판결이 확정됐는데, 이 과정에서 김씨는 수사 기관에서의 자백이 거짓이었다고 입장을 바꾸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번 재심 사건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 등을 통해 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법원은 김씨 측에서 신청한 재심 청구를 2015년에 받아들였다. 사건 발생 15년 만이다.

재심에서 검찰은 위법 수사를 부인하고 범인은 김씨가 맞다며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약 9년간 이어진 재심 절차 끝에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범행 동기와 자수 경위, 수면제 등 증거, 김씨의 알리바이, 강압·불법 수사 여부 등을 따져봤을 때 공소사실에 증명이 없다고 봤다.

특히 경찰이 김씨로부터 받은 자백 진술과 주변인 진술 모두 증거 능력이 없으며 범행 수법 자체가 실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행 직전 피고인은 친구들에게 전화해 만나자고 했는데 시체유기가 가능한 시간 등을 고려하면 범행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며 “범행 직전 행적은 계획적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동생들을 이용해 허위진술을 교사하고 피고인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등 의심스러운 점이 많으나 이러한 사정만으로 유죄를 단정할 수 없다”며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어 무죄”라고 판시했다.

재심 선고 후 김씨의 남동생은 “진실을 찾아준 재판부에 감사하다. 누나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준영 변호사는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 온 당사자(김씨)의 진실의 힘이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며 “출소 후 이 사건이 소비되지 않고 김씨의 마음과 상처가 회복될 수 있도록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장흥교도소로 이동한 박 변호사 등이 석방을 위한 절차를 밟으면서 김씨는 이날 오후 자유의 몸이 됐다.

한편 이 사건 재심은 판결이 확정된 1심이 대상이었기에 검찰이 항소할 경우 재판이 다시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