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에게 한없이 관대했던 프랑스 법정은 뫼르쇠를 이방인이라고 판단하자, 사형을 선고한다. 뫼르쇠의 살인에 누구나 무죄나 가벼운 형벌을 예상했었는데, 사형이 언도된 이유는 뫼르쇠가 이방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스티티아가 눈을 가린 이유는 피부색을 보지 않기 위해서도 분명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피부색에 따라, 우리냐, 너희냐에 따라 형벌의 무게가 달라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차이가 차별을 만든다.’ 우리는 심지어 차이가 만든 차별을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공정한 것인가? ‘나는 성소수자가 아니지만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그들의 사고와 행위를 이해한다. 나는 차별을 싫어하는 사람이고 공정한 사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러한 공정함이 전제부터 틀렸다고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작가 김지혜는 말한다.

김지혜에 의하면 아무리 수사를 바꿔도 성소수자, 장애인, 다문화, 여자 등으로 시작하는 말은 차이를 전제한 말이고, 이것은 차별로 이어진다. “힘내세요. 좋은 날이 올 거예요.”라는 선의 역시 선량한 차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면 바보가 된다. 김지혜는 죽자고 덤벼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숱한 차별은 아이러니하게도 차별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가 함께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을 만들었을까?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이러한 표현이 성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에 대해선 ‘일반 가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은 차이를 전제한 말이고, 그 차이는 선의의 배려까지도 차별이 될 수밖에 없다. 서 있는 지형을 가르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흑인을 흑인이라 하고,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다문화 가정을 다문화 가정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따질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흑인을 흑인이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하냐고 논리를 내세울지도 모른다. 그런 그대가 왜 장애인 앞에서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머뭇거리고, 다른 표현을 애써 찾았는지 묻고 싶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인 그대에게. 이처럼 지형을 가르는 표현은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것을 정당화한다.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선물의 ‘의미’를 제대로 말한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그래서 델라와 짐의 선물은 생일마다 기념일마다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선물은 주기도 받기도 어렵다. 그래서 꽤 긴 세월을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받고 나서 가슴이 벅차올랐던 선물의 기억이 많지 않다. 우리가 한 번쯤은 해봤을 “~이 선물 같다.”라는 표현이 선물의 가치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면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 역시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과거처럼 더 이상 그들을 범죄자나 예비 범죄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 사회에 기생하고 있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약자, 그래서 많은 배려가 필요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다른 지형에 서 있는 것이다. 이제는 같은 지형에 서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같은 지형에 서는 것은 다문화 가정에도, 우리에게도 선물 같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