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고원길 6구간이 시작되는 부귀면 장승삼거리에 도착했다. 장승삼거리는 부귀면소재지로 통하는 26번 국도를 벗어나 모래재로 가는 입구에 있다. 장승삼거리 주변은 첩첩산중이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좁은 골짜기를 따라 시냇물이 흘러간다. 물이 흘러가는 계곡 주변에 좁은 농경지와 마을이 형성돼 있다.

장승삼거리에서 모래재 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넓지 않은 농경지는 일찍이 수확을 끝내고 겨울휴식에 들어갔다. 텅 빈 논 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모래재 쪽에서 흘러온 세동천이 휘돌아가는 하천가 농경지를 바라보며 장승마을이 자리했다. 장승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뿔처럼 뾰족하게 솟아 마을풍경을 예쁘게 만들었다.

장승마을 앞을 지나 제1장승교 건너로 은행나무가로수가 이어진다. 지금은 은행잎이 다 떨어진 나목상태지만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을 때는 운치 있는 은행나무길이었을 것이다. 하천을 따라 모래재 쪽으로 걷다보면 하천 건너편 도로에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세동마을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도 세동천을 바라보며 자리를 잡았다.

메타세쿼이아길은 세동마을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길게 이어지면서 터널을 이뤘다. 갈색으로 물든 메타세쿼이아 나뭇잎이 햇빛에 반사돼 영롱하게 빛난다. 2차선 도로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살짝 내려앉았다 올라가는 경사까지 있어 부드럽고 유연하다.

메타세쿼이아잎은 한쪽은 무성한데, 다른 쪽은 상당수 떨어져버린 곳도 있다. 영롱하게 빛나는 메타세쿼이아나무와 미련없이 잎을 떨군 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 조금 더 걸어가자 모든 메타세쿼이아나무가 갈색으로 물든 잎을 그대로 달고서 우아한 멋을 보여준다.

사진동호회에서 단체로 온 사진작가들은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길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사진동호회에서 단체로 온 사진작가들은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길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굽은 길과 아래로 내려앉았다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모양의 메타세쿼이아길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찍는 포인트다. 간간이 지나는 자동차도,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바이킹족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천천히 메타세쿼이아 운치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메타세쿼이아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상을 보여주고는 미련없이 잎을 떨군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왼쪽 골짜기에는 신덕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신덕마을 안쪽 골짜기를 웅치골이라 하는데, 웅치골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호남정맥이 지나는 웅치에 닿는다. 웅치는 임진왜란 당시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웅치전투는 1592년 7월8일 웅치 고갯길에서 전주부성을 점령하기 위해 넘어오는 왜군을 맞아 조선관군과 의병이 크게 승리를 거둔 전투다. 웅치전투에서 크게 타격을 입은 왜군은 전주부성으로 진격하지 못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작천마을에 도착하니 구름재 박병순 생가라 쓰인 안내판이 눈에 띈다. 도로변에 자리한 박병순 생가는 초가로 복원을 해놓았고, 대리석으로 새긴 시비들이 마당 곳곳에 서 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제자인 시조시인 박병순 선생은 1939년부터 1978년까지 전주고 등 전라북도 여러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중앙대, 전주대 등에서 시조창작론, 고전세미나 시조가사론을 강의했다. 1952년부터 1960년까지 전라북도 최초의 시조 전문지 ‘신조’를 5집까지 발간했다.

시조시인 박병순 생가. 초가로 복원을 해놓았고, 대리석으로 새긴 시비들이 마당 곳곳에 서 있다.

박병순 생가에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거쳐 조그마한 저수지를 지나자 모래재휴게소다. 모래재를 넘어가는 이 도로는 과거 진안사람들이 전주를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했던 길이다. 지금은 부귀면소재지 근처를 지나는 4차선 26번 국도를 따라 전주로 가지만 예전에는 모래재를 넘어 구불구불한 산비탈을 돌고 돌아서 갔다. 지금도 모래재터널을 통과해 전주로 가는 옛 도로가 그대로 있지만 이용하는 차량은 적다.

주화산에 도착하기 직전 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 서쪽에서 불쑥불쑥 솟은 산봉우리들과 골짜기에 자리한 완주군 소양면의 마을을 앞에 두고 전주시내의 건물들이 다가온다.

모래재로 통하는 구도로를 걷다가 주화산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접어든다. 울창한 활엽수는 잎을 떨구어 나목이 됐고, 산길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능선에 올라서니 모래재라 쓰인 이정표가 서 있다. 주화산을 향하여 고도를 높여가는데, 나목을 이룬 숲 사이로 주변의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다가온다. 주화산에 도착하기 직전 데크로 만들어진 전망대에 올라선다. 서쪽에서 불쑥불쑥 솟은 산봉우리들과 골짜기에 자리한 완주군 소양면의 마을을 앞에 두고 전주시내의 건물들이 다가온다.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100m 쯤 더 가니 주화산(563.5m)이다. 장수군 영취산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분가한 금남호남정맥이 이곳 주화산에서 북쪽으로 금남정맥을, 남쪽으로 호남정맥을 이루며 뻗어나간다. 고원길은 금남호남정맥(부귀산 마이산 방향) 방향으로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주화산에서 200여m를 내려와 모래재공원묘지 쪽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난다. 고원길은 이제 주화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 8부 능선 임도를 따라서간다. 산허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가 길게 바라보인다.

임도 주변 활엽수는 모두 잎을 떨구고 나목상태로 숲을 이루고 있다. 한 여름 무성한 녹음을 이뤘던 활엽수는 얼마 전 단풍으로 물들었다가 이제는 모두 잎을 떨구고 나목이 됐다. 나무들은 한겨울을 견디며 내공을 키운 후 내년 봄 새싹을 틔운다. 지루할 정도로 산허리를 돌고 나서야 임도가 끝나고 산길로 접어든다. 고원길은 금남정맥에 솟은 입봉 동쪽 비탈을 따라 고도를 낮춰간다.

산길을 빠져나오니 진안에서 전주로 가는 26번 국도가 바라보인다. 새로 조성된 전원마을인 부천마을을 지나 원봉암마을로 향한다. 수확을 끝낸 농경지는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사람들도 겨울을 나기위해 김장을 하고 있다. 산에 기댄 마을들이 포근해 보인다.

정자천이라 불리는 하천 제방을 따라 걷는데, 26번 도로가 옆으로 지나간다. 정자천은 연석산과 운장산 서봉 사이에서 형성된 골짜기에서 흘러온 하천이다. 하천가에서는 저물어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 갈대들이 몸을 흔들고 있다.

사임암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800m 정도 걸으니 부귀면행정복지센터다. 부귀면은 진안에서 가장 높은 운장산과 연석산 남쪽자락 산골에 자리했다. 대부분의 마을과 농경지가 고도 300m가 넘는 고원지대다. 진안고원을 지나는 바람은 싸늘하지만 사람 사는 마을에서는 온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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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쪽지

▲진안 고원길 6구간은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길을 지나는 코스이자 금남호남정맥이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분기하는 주화산을 넘는 코스다.
※코스 : 장승삼거리→우정교→메타세쿼이아길→큰터골→모래재→주화산→임도삼거리→원봉암→사인암→부귀면행정복지센터
※거리, 소요시간 : 14.9㎞, 5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장승삼거리(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부귀면 모래재로 1073)

<장갑수·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