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대한 도전이다.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과 농촌 지역의 고령화, 인구 감소는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약화하며,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이런 위기 속에서 제시되는 해법 중 하나가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다.

살기 좋은 마을은 단순히 깨끗한 환경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육, 의료, 교통, 일자리 등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기본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여기에 더해 창의적 사업, 농업·관광업 육성, 지역 문화유산 보존 등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모든 노력의 중심에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이 있다. 주민들은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마을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자신들의 비전을 설계하고 함께 실현해간다. 마을은 이를 통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로 재탄생한다.

해남군 사례는 이러한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해남군은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협약을 통해 460억여 원 예산을 확보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변화와 참여를 끌어내고 있다.

지난주 해남군농어촌협약지원센터 주관으로 열린 ‘땅끝, 천년의 마을 콘테스트’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구체적인 성과와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행사에 참여한 12개 마을은 각각의 마을의 현황과 발전 계획을 발표하고, 퍼포먼스와 공연을 통해 마을 재생의 핵심 동력인 주민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단결하는지를 생동감 있게 보여줬다.

마을 주민 70여 명이 함께 만들어낸 공연 ‘오늘이 있기까지’는 마을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희망적인 미래를 다지는 의미를 담아냈다. 이어진 깃발 행진은 각 마을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보여주며, 협력과 연대를 강조했다.

이날 마을마다 선보인 깃발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을의 역사였고, 꿈과 비전을 담아낸 주민들의 결의였다. 깃발 아래 하나가 된 주민들은 서로 다른 역사와 색깔을 어우르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의지를 다졌다.

깃발은 주민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더 나은 마을과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결속과 연대의 상징으로, 함께 나아가는 걸음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임을 일깨워주는 존재였다. 서로의 노력을 하나로 모아 미래를 밝히고, 마을의 재생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알리는 출발점이었다.

농촌협약은 농촌 지역 생활권 활성화를 목표로 시군이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이를 실행하는 제도다. 2020년부터 시행된 이 협약은 농촌중심지 활성화와 기초생활거점 조성을 통해 살기 좋은 농촌 마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2020년 보성군의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나주, 화순, 장흥, 강진(2021년), 순천, 구례, 해남, 함평(2022년), 영암, 영광(2023년), 광양, 담양, 장성(2024년) 등 총 14개 시군이 농촌협약에 선정되어 사업을 추진하거나 준비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독일의 마을 재정비 프로그램(Dorferneuerung)이나 일본의 ‘마찌쯔꾸리’처럼 농촌 재생과 공동체 강화에 초점을 둔 해외 사례와도 맞닿아 있다. 다만 독일과 일본의 예가 주로 지역공동체 회복 및 정서적·사회적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었다면, 우리의 마을 만들기는 ‘지방 소멸’이라는 절박한 현실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급함과 절실함이 있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의 시작점은 주민들이 함께 꿈꾸고 노력하는 데 있다. 외부의 지원은 출발을 돕는 마중물이 될 수 있지만, 진정한 힘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에서 만들어진다. 주민 주도의 변화 속에서 마을은 비로소 단순한 주거지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로 탈바꿈한다.

깃발이 물었다. “어디로 가고 싶은가?”

마을이 답했다. “천년의 미래를 향해.”

마을의 활력을 되살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나아가는 데 주민의 참여는 핵심 요소다. 모처럼 일궈낸 주민 참여와 합의가 마을을 살리고, 천년을 향한 미래로 나아가는 희망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