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광주 오월 이야기를 품어낸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 더덩실 춤이 저절로 추어진다. 소설가 한강의 영예로 끝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광주의 승리이자 영예인 셈이다. 그동안 그토록 외쳤건만,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머물기 십상이었던 광주의 이야기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스르륵 퍼져나간다. 우리의 광주가, 우리의 오월이 어느덧 보편성을 띠고 세계 만방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날이 오다니, 꿈만 같다. 엉덩이가 들썩여지고 어깨춤이 절로 난다.

한 전시관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루룩 눈물을 쏟았다. 그림 앞에서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먹먹해지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지난 달 전남대 용지관 전시실에서 열렸던 수묵화가 김호석의 ‘마지막 입술_먹다남은 단팥빵’이다. 작가가 광주의 오월이야기를 토대로 발표했던 25점 중 하나다. 그 즈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수묵화로, 소설로 형상화한 이 상황, 1980년 5월 부당하게 죽어간 소년 문재학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이다. 겨우 열 여섯살이었다. 교련복을 입은 문재학은 도청의 마지막날 계엄군에 의해 잔혹하게 죽어갔다. 그 옆에 먹다만 단팥빵을 바로 옆에 두고서.

노란 은행잎이 질펀하게 깔린 길을 따라 걷는다. 봄꽃 만큼이나 이쁜 은행잎이 눈이 시린 이 계절, 가슴이 헛헛해진다. 낙옆 뒹구는 때 오히려 푸른 잎이 청청했던 청춘의 시기가 그리워지고 그 시절의 활기참이 떠오른다. 그리곤 그 아쉬움을 안으로 수그려 품어낸다. 잎을 떨구며 나목이 되어가는 이때 생명의 에너지가 약동하는 봄이 그리워짐은 무슨 아이러니인지. 이러저러한 생각을 질정없이 하며 다다른 곳, 동구 인문학당이다. 지난 27일, 동구 인문학당이 첫 번째로 여는 ‘작가의 방’에 김호석선생이 초대돼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들었다. ‘마지막 입술_먹다 남은 단팥빵’을 중심으로 한 5월작품이 그 이야깃거리다.

동구 인문학당 2층 다락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몰입한다. 그 중의 한 분이 앞단에서 묻는다. 이 시대 우리가 진 짐이 무엇이냐고. 김호석선생은 “피의 역사를 피의 역사로만 주장하는 한 광주의 역사는 치유되지 않는다”며 우리가 먼저 용서하자고 말한다. 광주는 국가폭력에 저항하며 어떤 압박에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세계인권역사의 산실이었다고 덧붙인다. 작품으로 들어간다. 먹다 남은 단팥빵, 그 소년의 어머니가 이 작품을 보았을 때 그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 일반 관객들도 이렇게도 가슴이 저미어 오는데. 거기 참석한 모든 이들이 너나할 것없이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토해낸다. 먹다 남은 단팥빵은 그 소년들이 살아갈 미래의 모습이 함축적으로 드러난 거 같다, 교련복을 부각시킨 것은 작가의 의도인 거 같다 등등이 쏟아져 나온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로는 당시 무섭도록 적막이 컸다고 했다, 그 적막을 깨고 단팥빵을 먹었을 거다, 그리고 그 단팥빵을 다 먹기도 전에 조준사격에 의해 스러져 갔다, 그리고 강함을 드러낼 때는 강함이 아닌 약함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작품을 둘러싼 배경과 그림에 대해 작가는 답변했다.

소설 ‘소년이 온다’와 그림 ‘마지막 입술’은 1980년 5월29일 도청의 마지막 날, 국가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죽음을 맞이한 소년 문재학을 다룬 예술작품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우리는 이 두 개의 작품을 교차로 읽고 보면서 사건을 입체적으로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노벨문학상은 한강 개인의 성과가 아니고 광주가 거둬들인 결실이다, 자신이 그린 이 작품 역시 광주의 작품이라고 김호석선생은 단호하게 말한다. 톨스토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했다. 예술은 미적 쾌락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기능을 되찾기 위한 ‘소통’과 ‘공감’이라고. ‘마지막 입술’이란 작품을 놓고 당시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우리를 담금질했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곰곰이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소년이 미처 살다가지 못한, 꿈꾸고 바랬던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조금씩 선명하게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