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가을이 기울어 가는 10월과 11월, 마을은 주민총회와 마을축제로 떠들썩한 잔치를 벌리고 있다. 지난 1년간 추진했던 마을의제와 사업들을 결산하고 내년도 계획과 의제들을 확정하는 주민총회가 광주 96개 동에서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주민들의 재능과 장기를 펼쳐 보이고 나눔과 화합을 다지는 마을축제도 함께 열려 모처럼 마을에 따뜻한 활기가 가득하다.

주민총회는 주민자치회의 출범과 함께 강화된 마을의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주민자치회 이전에는 마을의 주요 사업과 계획은 동장과 동네 유지 몇몇이 결정하고 집행할 뿐이었다. 그러나 주민자치회의 출범과 함께 동 주민 누구나 참여하고 즐기는 마을공동체의 공론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주민총회에 참여한 주민들은 마을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숙의 민주주의를 경험한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하는 ‘민주적 공동체의 존립을 보호하는 공론장’이 마을에서 진화하고 있다. 마치 전통 마을에서 초하드렛날 마을총회를 열어 동네일을 결정하고 머슴날 축제의 하루를 즐겼듯이, 주민총회가 아파트 숲속에서 주민자치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서구 풍암동에서는 올 3월부터 주민총회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마을의제학교를 운영해 마을의제를 발굴, 선정한 후 실행계획까지 미리 준비했다. 그리고는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신암공원 등을 찾아가 다양한 의견을 들었으며, 신암초교 등 어린이 660명을 대상으로 학교총회를 열어 의견을 듣고 청소년 의제를 발굴했다. 그리고 마을미디어와 아파트연합회를 통해 적극 홍보하고 QR코드로 사전투표를 실시했다. 총회 당일에는 프로그램 이용권을 배부해 참여를 독려하기도 해 전체 주민 3만4천명 중 6%(2천100여 명)가 참여해 ‘테마가 있는 공원’, ‘담배 냄새 없는 거리’, ‘마을 힐링캠프’ 등 6개의 마을의제를 결정했다. 북구 운암2동에서는 주민총회장에서 텃밭 플리마켓, 업사이클 화분 전시, 위기가정 발굴 캠페인을 동시에 열고, 학생들이 안전한 마을만들기 등 10개 마을의제를 결정했다. 남구에서도 송암동의 굴다리음악회, 사직동의 광주공원 맨발걷기, 전통우물 통샘 포토존, 양림동의 주민 연극단 운영을 의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특히 화정2동에서는 청소년들이 제안한 의제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동아리 활동 및 축제 추진’에 따라 청소년 동아리와 함께 마을축제를 열어 청소년과 학부모 주민 3천여명의 열광적 환영을 받았다. 마을의제도 어린이 교통안전시설 조성, 청소년 진로 탐색프로그램 운영, 세대공감 배움의 장 마련 등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의제를 폭넓게 선정했다.

이러한 주민총회와 마을축제의 진화는 그동안 쌓아온 주민자치의 역량과 경험들이 마을 일을 한자리에서 즐겁게 논의하게 해 주민참여를 크게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주민총회추진위원회와 마을의제학교를 미리 운영하거나, 공원이나 학교를 찾아가고, 총회 장소를 여러 곳으로 분산해 참여를 유도한 점도 성공적이었다. 아울러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하고 실천가능한 의제들이 주민총의로 결정됐다는 점도 달라진 모습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몇몇 동에서는 주민총회답게 주민참여율이 10%에 가깝게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마을자치의 가능성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를 보는 듯하다. 물론 마을의제와 예산의 연계, 투명하고 효율적인 사업의 집행, 자주적 운영 확대 등 여러 난제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올해의 경험을 성찰 확산해 주민자치의 꽃으로 차분하게 가꾸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