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면사무소 쓰레기장에서 주운 고무풍선은 추억이 담긴 소중한 놀이도구였다. 어른들로부터 야단을 맞으면서도 그것이 출산을 제한하기 위한 콘돔이었다는 사실을 한참 성장한 이후에 알았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부분 가정에서 5남매를 두었으니, 그 시절 부모님은 겁이 없었든지 아니면 배짱이 두둑하셨던 듯하다.

1970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4.53명. 1960년엔 6명으로 더 높았다. 당시 개발도상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매년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올해는 0.6명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현재의 출산율이 유지된다면 한국 인구는 지금의 3분의 1, 어쩌면 더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출산율을 최우선 해결 과제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 많은 자녀를 둔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아이를 갖기를 권했다.

머스크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한국을 꼭 집어 거론하면서 한국 사회의 심각한 소득격차, 특히 가난을 주목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소득 계층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저소득층의 출산율은 고소득층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경제적 부담이 크며, 아이가 자라서 맞이할 미래 또한 불투명하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사실상 결정되는 사회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상대적으로 제한된 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기업과 자치단체들이 앞을 다퉈 출산 장려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이 ‘돈 뿌리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집값이 비싸서” “임금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고 하기엔 다른 나라 사정과 비교된다.

우리보다 열악한 나라의 국민도 아이를 더 많이 낳는다. 온 국민이 배고프던 60-70년대는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잘사는 지름길이라 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낳았다. 저출산 문제는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집단적 저항으로 해석된다.

과거 미국 사회에서 일손을 확보하기 위해 지주로부터 출산을 강요받던 흑인 여자 노예들의 선택과도 닮아있다. 그들은 자식에게 억압과 고통의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목화 뿌리를 씹으며 피임을 선택했다. 대물림을 끊어 내려는 절박함은 오늘날 청년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가치는 더 이상 최우선 삶의 의미가 아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 조사에 따르면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가족을 1위로 꼽지 않은 나라는 단 세 곳, 그중 하나가 한국이다. 대만은 사회를 꼽았고, 스페인은 건강을 택했다.

한국 사람은 물질적 풍요 즉,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 이는 물질적 풍요에 대한 압박감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가족보다는 개인의 삶과 경제적 자립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출산 기피 현상을 청년들의 태업이나 파업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저출산이 ‘파업’이라면 그 안에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청년들이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며, 이 저항이 사보타주로 발전하기 전에 해결책을 찾아 내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출산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물려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의미와 희망을 되찾아줄 수 있는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 성공의 기회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높이고, 단순히 경제적 지원을 넘어서 삶의 질과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대를 위한 출산과 가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을 아예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다 같이 잘 살 수는 없어도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는 기대해 볼 수 있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기 어렵다면 차라리 인구 3천만이나 2천만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