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으로 가는데 너른 들판과 낮은 산이 한없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부드럽고 온화한 백제문화를 보는 것 같다. 미륵사지 앞을 지나 기양리 미륵산주차장에 들어서니 넓은 주차장에 승용차가 꽉 차 있다. 미륵산은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익산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다.

‘미륵산 둘레길’은 미륵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서 시작된다. 추운 날씨에도 숲속에 들어서니 포근하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20여분 걷다보니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와 미륵사지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미륵사지 방향을 선택한다.

산길을 벗어나니 미륵사지가 내려다보인다. 미륵사지 옆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국립익산박물관을 거쳐 미륵사지로 들어선다.

나는 미륵사지에 갈 때마다 미륵산 앞쪽으로 펼쳐지는 미륵사지의 텅 빈 공터를 넋을 잃고 바라보곤 한다. 석탑 두 기와 당간지주 두 기만이 서 있는 넓은 폐사지가 쓸쓸하면서도 ‘텅 빈 충만감’을 가져다준다.

백제 무왕은 42년 동안 재임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백제문화의 전성기를 이뤘다. 무왕은 강화된 왕권에 힘입어 익산 미륵산 자락에 왕궁과 정원, 큰 사찰을 짓고 도성을 쌓았다. 무왕이 익산 미륵산 아래 금마지역에 미륵사라는 큰 사찰을 짓고, 왕궁리에 왕궁을 건립한 것은 백제의 부흥을 위해서였다.

미륵사지는 우리나라 절터 중에서 가장 크다. 그것도 평지사찰이라 더 넓게 느껴진다. 미륵사지 가장 앞쪽에는 두 개의 연못이 있고, 연못 뒤로 두 기의 당간지주와 두 기의 석탑이 절터를 지키고 있다. 마륵사지 뒤편에는 미륵산이 미륵보살처럼 듬직하게 앉아있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제236호). 미륵사지석탑 앞쪽에 두 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백제 무왕 때 창건된 백제 최대사찰 미륵사는 17세기경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폐사된 미륵사는 미륵사지석탑과 당간지주 등 일부 석물만 남긴 채, 사적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경작지와 민가로 변해버렸다. 한쪽이 떨어져 나가고 6층만 남은 미륵사지 서석탑은 일제강점기 때인 1915년 탑의 붕괴를 막는다고 한쪽을 시멘트로 덧발라버렸다.

발굴을 통해 확인된 가람배치를 보면 미륵사지는 동원석탑과 서원석탑이 있고 그 중간에 목탑이 있었으며, 각 탑의 북편에 금당의 성격을 가진 건물이 하나씩 있었다.

3탑 3금당 구조를 갖추고 사방에 긴 복도를 갖춘 회랑을 두었다. 건물은 없어졌지만 발굴을 통하여 세 개의 금당과 회랑, 강당, 승방 건물이 있었던 터를 복원해 당시 사찰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미륵사지에 있는 동원석탑은 서원석탑(미륵사지석탑)의 발굴결과를 바탕으로 1992년 복원됐다. 복원된 동원석탑을 통해 온전한 미륵사지 9층 석탑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미륵사지에 있는 동원석탑은 서원석탑(미륵사지석탑)의 발굴결과를 바탕으로 1992년 복원됐다. 복원된 동원석탑을 통해 온전한 미륵사지 9층 석탑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미륵사지석탑은 2001년 10월부터 해체·보수작업을 시작해 18년 만에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9년 4월 개방됐다. 복원된 석탑높이는 14.5m, 너비 12.5m에 이른다. 석탑 1, 2층은 옛 모습 그대로, 3층부터 6층까지는 시멘트를 뜯어내고 원재료의 81%를 사용해 남아있던 모습 그대로를 복원해 석탑의 진정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

미륵사지석탑은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 또한 가장 큰 탑으로 장중함과 단아한 면모를 함께 지니고 있다. 석탑 아래 네 귀퉁이에는 투박하지만 정감 넘치는 석인상이 1300여 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은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 또한 가장 큰 탑으로 장중함과 단아한 면모를 함께 지니고 있다. 미륵사지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자 고대건축사례로 평가된다.

미륵사지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자 고대건축사례로 평가된다.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은 공주, 부여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에 얽힌 미륵사 창건설화가 기록돼 있다. 어느 날 무왕과 왕비인 선화공주가 용화산 사자사를 찾아가던 길에 산 아래 큰 연못에 이르렀다. 발길을 잠시 멈춘 사이 연못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미륵삼존불이 나오자 선화공주가 무왕에게 절을 세우자고 했고, 무왕은 연못을 메워 절을 짓고 미륵사라 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9년 1월14일, 이 탑의 탑신 1층 중앙기둥을 해체·조사하는 과정에서 미륵사지의 창건연대와 창건주를 기록한 사리봉안 기록판과 금제 사리항아리 등 유물 500여 점을 발굴했다. 이를 통해 미륵사는 무왕 재위 40년 서기 639년 백제 왕후의 발원으로 건립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금판 앞뒷면에 194자로 된 사리봉안 기록판에는 시주자의 신분이 무왕의 왕후로, 좌평(백제의 최고관직)인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무왕의 왕비 선화공주의 간청으로 미륵사를 건립했다는 ‘삼국유사’의 내용과는 다른 부분이다. 하지만 두 기록 모두 미륵사가 백제 무왕 때 왕실에서 주도하여 창건된 것만은 일치된다.

복원된 미륵사지동원석탑 옆 산길로 들어선다. 미륵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만나지만 미륵산 둘레길은 구룡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산허리를 따라 완만하게 돌아가는데 길 아래로 전북과학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전북과학고등학교 뒤를 지나자 화산서원(華山書院) 뒤편이다. 익산 미륵산 자락에 있는 화산서원은 1657년(효종 8년)에 창건되었다. 조선중기 학자이자 문신이고 송시열의 스승이었던 사계 김장생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창건 5년 후 1662년(현종 3년)에 사액서원이 됐으며, 1695년(숙종 21년)에 우암 송시열을 추가 배양했다.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과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다가 1968년 익산 팔봉 유림들이 주축이 돼 중건했다.

1657년(효종 8년)에 창건된 화산서원은 조선중기 학자이자 문신이고 송시열의 스승이었던 사계 김장생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포근한 숲길은 구룡마을로 이어진다.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마냥 늠름하게 서 있다. 수령 300년을 훌쩍 넘긴 구룡마을 느티나무는 수고 20m, 가슴높이 둘레가 4.6m나 되는 거목이다.

겨울철이라 나목을 이룬 느티나무가 섬세한 가지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느티나무 앞으로 넓은 대나무밭이 바라보인다.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면적이 5만㎡에 이른다. 논길을 건너 대나무숲으로 들어선다. 곧게 뻗은 왕대들이 하늘높이 솟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왕대의 북방한계선에 자리하고 있어 생태적 가치가 높다. 드라마 ‘추노’를 비롯해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면적이 5만㎡에 이른다. 곧게 뻗은 왕대들이 하늘높이 솟아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왕대의 북방한계선에 자리하고 있어 생태적 가치가 높다. 드라마 ‘추노’를 비롯해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규모나 대나무 크기가 담양 죽녹원에 미치지 못하지만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대숲에는 하얀 눈이 살짝 덮여있어 푸른 대나무와 대비를 이룬다. 구불구불 나 있는 대나무숲길이 청신하고 운치 있다. 대숲길을 걷는데 대나무가 사각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다듬어진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익산 미륵산 자락에는 백제 무왕시절 왕도를 건설하려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그것이다. 익산 미륵산 둘레길은 미륵사지를 중심으로 미륵산 기슭을 따라 걷는 길이다.
※코스 : 기양정류장→미륵산등산로→미륵사지→화산서원→구룡마을 대나무숲
※거리, 소요시간 : 8㎞, 2시간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익산 미륵산주차장(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2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