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삼성궁’과 ‘하동 회남재 숲길’
남명 조식선생이 되돌아간 고갯길을 걷다
2022. 11. 29(화) 18:53 가+가-

삼성궁 마고성 안으로 들어서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이 신비감을 더해준다. 에메랄드빛 연못을 감싸고 있는 마고성과 오색단풍들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이뤘다.

‘하동 회남재 숲길’을 걷기 위해 지리산 청학동으로 향한다. 길은 좁은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고 먼 길을 달려온 지리산의 잔맥들이 깊은 산골을 이뤘다. 청암면소재지를 지나 하동호로 올라선다.

눈앞에 커다란 호수가 펼쳐진다. 청학동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묵계천을 가로막아 만들어진 하동호 물은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하동호를 지나자 산골은 점점 깊어진다. 좁은 골짜기에는 묵계천이 굽이굽이 이어지고, 계곡 주변 산자락에는 좁은 농경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골짜기에는 군데군데 작은 마을들이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하동호에서 12㎞ 정도를 더 올라가니 조그마한 묵계저수지가 나온다. 묵계저수지에 붉게 물든 산봉우리가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놓았다.

학동마을에 이르자 길 위에 ‘지리산 청학동’이라 쓰인 산문이 서 있다. 청학동은 해발 800m의 지리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며 고운 최치원선생도 은거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청학동이라 불렀다.

현재의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학동마을이 청학동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 입지가 전설상의 위치와 비슷하고 한국전쟁 이후 이곳에 들어와 흰 한복과 상투머리를 하고 전통적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살았던 소위 유불선합일갱정유도교라는 종교인들이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삼성궁주차장에 도착했다. 삼성궁은 근래에 생긴 곳이지만 청학동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청학동 관광객 대부분은 삼성궁을 보기 위해서 온다. 삼성궁에 들어서자 수많은 돌담과 돌탑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돌담 사이에는 돌문이 있고, 우리는 여러 개의 석문을 통과하면서 마고성으로 향한다. 바위 면에는 도깨비상 등 고조선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먼 옛날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몇 개의 석문을 지나자 눈앞에 마고성이라 불리는 성벽이 나타난다. 돌로 쌓은 성문을 통과해 마고성 안으로 들어선다. 마고성이라는 이름은 지리산의 마고할미 전설에서 비롯됐다. 마고성 안으로 들어서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이 신비감을 더해준다. 에메랄드빛 연못을 감싸고 있는 마고성과 오색단풍들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이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풍경을 사진으로 담느라 분주하다. 성벽에는 돌로 쌓은 솟대가 있고, 성벽 사이사이 사각형 창틀 속에 여러 형태의 얼굴조각이 놓여있다.

마고성에서 짧은 숲길을 통해 고개를 넘어서면 삼성궁 구역이다.

해발 850m 산비탈에 자리한 삼성궁은 고조선시대 천신에게 제사지내던 소도를 현대에 맞게 복원한 곳이다. 매년 음력 10월3일에는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개천대제를 지낸다.

해발 850m 산비탈에 자리한 삼성궁은 고조선시대 천신에게 제사지내던 소도를 현대에 맞게 복원한 곳이다.


삼성궁은 청학동 출신인 한풀선사 강민주가 1983년부터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천500여기의 솟대돌탑을 쌓고 여러 개의 연못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 삼성궁은 132,231㎡(4만평)에 이르는 산지에 고대의 소도를 상징하는 돌탑과 조형물들이 주변 숲과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 됐다.

삼성궁의 중심은 건국전으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성전이다. 삼성궁(三聖宮)이라는 이름도 환인, 환웅, 단군 등 세 성인을 모시는 궁이라는 뜻이다. 건국전 아래로 수많은 맷돌, 절구통, 다듬이돌 등 우리 전통의 도구들로 가꿔진 길과 담의 전경이 펼쳐진다. 돌담 아래에는 태극지라 불리는 연못이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다.

삼성궁의 중심은 건국전으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성전이다. 삼성궁(三聖宮)이라는 이름도 환인, 환웅, 단군 등 세 성인을 모시는 궁이라는 뜻이다. 건국전 아래로 수많은 맷돌, 절구통, 다듬이돌 등 우리 전통의 도구들로 가꾸어진 길과 담의 전경이 펼쳐진다.


삼성궁주차장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회남재 숲길’을 걷기 시작한다.

회남재 숲길은 청학동과 하동군 악양면을 잇는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주변은 다양한 종류의 활엽수림으로 뒤덮여 있다.

회남재 숲길은 청학동과 하동군 악양면을 잇는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임도 주변 활엽수들은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 화사하고 우아하다. 오색단풍 아래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임도 주변 활엽수들은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 화사하고 우아하다. 오색단풍 아래에는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나무에 매달려있는 예쁜 단풍잎도 며칠 후면 낙엽이 될 것이다. 떠나야할 때를 알고 미련 없이 떠나는 단풍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길은 산허리를 돌고 돌아가며 곡선을 그린다. 천천히 걷는 발걸음에 여백이 생긴다.

회남재 숲길은 사철 걷기 좋은 길이다. 봄이면 신록이 생명의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여름철에는 짙은 녹음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지금 같은 가을철에는 단풍길이 돼주고, 겨울철에는 나목의 정제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게다가 출발지인 삼성궁주차장과 회남재는 고도차가 거의 없어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다. 나무 사이로 가끔 청학동 마을과 지리산 남부능선에 솟은 삼신봉이 바라보인다. 외부세계와 동떨어진 지리산 깊은 산속 청학동이 별천지 같다.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회남재에 도착했다. 회남재는 하동 청학동과 악양면을 잇는 해발 740m에 위치한 고개다.

이 고개는 옛날부터 하동시장, 화개장터를 연결하는 서민들의 경제적 통로이자 산청, 함양 등 지리산 주변 주민들이 널리 이용하는 소통의 길이었다.

지리산 아래 산청군 덕산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조선시대 선비 남명 조식 선생은 1560년경 풍광이 수려하고 살기 좋다는 악양 땅에 가려고 이 고갯마루까지 올랐지만, 힘이 들어서인지 악양으로 내려가지 않고 발길을 돌려 산청으로 되돌아갔다. 이후 사람들은 남명의 ‘남(南)’과 되돌아갔다는 뜻의 ‘회’(回)를 따서 ‘회남(回南)재’라 불렀다.

회남재에는 회남정이라는 편액이 붙은 정자가 서있다. 회남정에 올라서니 넓은 악양들판과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섬진강 뒤편으로 광양 백운산능선이 잔잔한 산맥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남부능선에서 마지막으로 솟구친 형제봉 자락에 자리한 악양면 평사리는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됐다.

회남재에서 바라보면 넓은 악양들판과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섬진강 뒤편으로 광양 백운산능선이 잔잔한 산맥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남부능선에서 마지막으로 솟구친 형제봉 자락에 자리한 악양면 평사리는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됐다.


회남재에서는 길이 세 갈래로 나눠진다. 청학동 삼성궁으로 연결된 길, 악양으로 이어지는 길, 그리고 묵계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그것이다. 회남재 숲길은 묵계마을 방향으로 이어진다. 삼성궁 쪽에서 오는 길은 산허리를 완만하게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묵계마을로 가는 길은 내리막 임도다.

천천히 걷는 발걸음에 은은하게 물든 단풍이 함께해준다. 짙푸른 잣나무숲을 만나기도 한다. 전망이 트일 때면 삼신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낙남정맥 줄기가 바라보인다. 임도를 따라 굽이굽이 걷다보니 어느덧 묵계저수지와 묵계마을이 눈앞에 와있다. 삼신봉과 낙남정맥에 감싸인 묵계마을이 고요하고 한적하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하동 회남재 숲길’은 지리산 청학동에서 악양으로 넘어가는 회남재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다. 회남재는 남명 조식선생이 고개를 넘지 않고 되돌아갔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코스 : 삼성궁주차장→회남재→묵계초등학교
※거리, 소요시간 : 10㎞, 3시간 30분 소요(삼성궁 관람시 4시간30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삼성궁주차장(경남 하동군 청암면 삼성궁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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