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민주화운동 사랑방 ‘봉심정’](18)김은경
“봉심정, 민주열사 기억·부활하는 장소로 보존해야”
전남여고 재학시절 함석헌과 교류 통해 민주화 운동 입문
YWCA 청년·부녀회 결성…송백회 창립·윤한봉 밀항 도와
2022. 11. 27(일) 19:50 가+가-

김은경(67)씨는 전남여고 재학 시절부터 함석헌을 통해 민주·자유주의 사상에 입문했고, 봉심정 민주인사들과 교류하며 YWCA 청년회 조직, 송백회 창립 등 다양한 민주화운동을 펼쳤다./오복 기자

“(함석헌)할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여자 한 사람으로도 나라를 구할 수 있단다.”

김은경(67)씨는 사상이 깨어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1970년대는 농촌과 도시 모든 지역이 공업화와 산업화 정책으로 격변하던 시기이며, 이로 인해 농촌 이민과 도시 빈민화가 심화되던 때다.

당시 씨알의소리 편집장이었던 함석헌은 광주를 방문할 때면 김씨의 아버지를 찾아 왔고, 이를 인연으로 김씨는 함석헌을 스승이자 또 다른 아버지로 여기며 따랐다. 그와 몇 년간 꾸준한 편지 교류를 통해 분단의 현실과 독재체제 등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토론했고 폭풍우 같았던 시대의 혼돈에 귀 기울이며 변화를 꿈꿨다.

김씨는 함석헌이 보낸 편지로 분단의 현실, 전태일 열사가 몸을 불살라 노동자들을 위해 희생한 사건 등 독재체제와 불합리한 세상에 저항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다.

또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불평등을 겪고 제약이 심했던 시절이었지만 ‘여성의 힘’을 늘 강조했던 함석헌에 힘입어 사회 고정관념을 깨고 끊임없이 불의에 저항하고 진리를 실현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그가 민주화 인사들의 사랑방인 봉심정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전남여고 재학시절부터다. 광주를 찾은 함석헌을 통해 봉심정의 주인 김정길을 만났고 봉심정에서 김남주, 이강, 윤강옥, 윤한봉, 김상윤, 최철, 박세정 등 민주화 인사들과 정보를 나누면서 꿈꿔왔던 농민운동, 의식화·문화운동에 뛰어들었다.

함성지 사건 등으로 김남주, 이강 등 봉심정 민주인사들이 재판을 받을 때마다 방청을 갔고, 민주화를 논의하며 반유신·자유민주주의의 염원을 함께했다.

김씨는 1974년 재수 시절 YWCA 특별사업부에 근무했다.

당시 회장이던 조아라 여사의 든든한 지원 아래 민주화 외에도 농민운동, 의식화 운동을 활발하게 이어갔다.

김씨는 “농민의 상황을 직접 보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수확의 결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농촌 현실을 겪으며 나는 내면적으로 단단하게 성장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광주시에 속했지만, 행정적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던 망월동 인근으로 파송돼 1년여 동안 농민운동을 이어갔다. 부녀회와 청년회를 조직했고 여름철과 농번기 어린이 학교 운영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쪽잠을 자면서 해낸 그는 1년이 지난 후 이곳에 교회를 설립했다.

산업선교활동을 통해 이뤄낸 이 결실은 김씨와 이애라 수녀, 여성 단둘이 해낸 일이다.

그는 민주화 대중 확산과 의식화를 위해 청년회인 고인돌을 조직, 수많은 강연을 연결해 독재체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 논의하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했다.

또한, 함석헌의 비폭력 평화주의 뜻을 이어받아 YWCA 산하 평화간디연구모임도 만들었다.

김씨는 “(함석헌)할아버지는 진리를 실현하는 자아를 형성시켜주고 이끌어 나갈 힘을 주는 존재”였다면서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선생님이던 그를 통해 투지를 가진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1978-79년 김씨는 조아라 여사와 황석영의 부인 홍희윤, 민청학련으로 수감된 민주인사들의 아내들과 송백회를 창립했다.

송백회는 광주의 민주화 인사들을 든든히 지원하는 자금줄이자 국가권력의 횡포로 수배된 민주인사를 도피시키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5·18 이후 주동자로 지목된 윤한봉의 밀항 때 마산까지 데리고 가 배를 태워 보낸 것도 송백회창립 멤버인 김씨다.

김씨는 평소 함석헌이 강권했던 한국신학대학교에 1979년 입학, 서울로 향해 광주 민주화 조직과 서울을 잇는 역할을 이어나갔다.

1999년부터는 목사 안수를 받고 전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전북이주여성인권센터 성폭력 상담소장, 한국기독연맹총회장 등을 역임하며 여성의 인권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김씨는 봉심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크게 주목했다.

그는 “당시 주인인 김정길의 거주에 상관없이 항상 그의 어머니 장매남 여사와 여동생 김정순이 밥을 지어 찾아오는 민주인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재웠다. 봉심정은 갈 곳 없던 민주인사들을 포근하게 품어준 장소”라면서 “어려운 시절 매끼를 챙겨 먹이던 그 여성들이, 그리고 그들의 부모이자 (송백회 등)배우자, 수많은 여성이 지금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확신했다.

이어 김씨는 “그때 수많은 민주열사가 민주 역사에 한 줄기로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봉심정에 모였다 쓰러져간 수많은 사람, 그들이 이뤄낸 민주주의와 염원을 담아 ‘다시 기억하는 장소로, 회생하고 부활하는 장소’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복 기자
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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