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상, ‘거대 기계’에 대한 굴종 아닌가? / 이성대
2022. 04. 14(목) 19:29 가+가-

이성대 시사평론가

현 시대는 기계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다. 우리들은 일상적으로 수많은 기계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우선 우리가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인류가 이룩한 첨단기술의 총체이자 초정밀 기계의 하나다. 반도체 칩을 비롯한 열거하기조차 힘든 수많은 부품들과 기기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비좁은 공간에 정밀하게 설계되고 배치돼 있다.

스마트폰이 탄생하는데 밑거름이 된 컴퓨터는 어떠한가?

21세기 인류문명은 컴퓨터 문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오늘까지도 인류에게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계장치 중의 하나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대부분 가정의 안방과 거실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기계의 작동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텔레비전이 없는 우리의 일상을 상상할 수 없다. 그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계장치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우리의 출퇴근길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자동차와 버스, 전철은 어떤가? 역시 정밀하게 제작되고 조립된 수만 개의 부품들로 이뤄진 정밀한 기계장치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집안에서 가사를 줄이는 데 혁신적인 역할을 한 청소기와 세탁기는 어떤가? 역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기계장치임에 분명하다.

이처럼 우리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수많은 기계들에 둘러싸여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가히 기계문명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기계에 둘러싸여 살게 된 것은 산업혁명 시대 이후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에너지원의 혁신이 일어나자 이를 활용한 기계의 발명이 이어졌고, 이는 결국 산업활동의 폭발적인 증가를 의미하는 산업혁명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 이전 시대에도 인류 역사에 기계는 발명되고 있었지만 기계가 우리의 일상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근대 산업혁명 이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극적인 반론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문명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 1895-1990)가 대표적이다. 멈퍼드는 ‘거대 기계’(mega-machines)라는 개념을 통해 인류사에 기계가 등장한 것은 훨씬 오래된 고대임을 주장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불가사의한 건축물인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은 고대의 ‘거대 기계’였다는 것이다.

사실 멈퍼드가 말한 ‘거대 기계’는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형태의, 눈에 보이는 기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계였다. 정밀한 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개개의 사람들을 하나의 부품처럼 활용해 만들어진, 거대한 사회적 조직체계를 멈퍼드는 ‘거대 기계’로 표현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이 ‘거대 기계’를 활용해 수십 년에 걸쳐 불가사의한 건축물인 피라미드를 건축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계에 대한 멈퍼드의 통찰력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해 온 거대한 힘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즉 인류가 기계를 만들고, 기계가 인류를 만들어 온 과정이 인류의 역사일 수 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기계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계가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온 힘의 실체였다는 멈퍼드의 시각은 새롭고도 아찔한 느낌을 준다.

‘거대 기계’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도 관료제와 군대체제일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제국들, 고대 이집트의 왕국들, 로마제국, 중국의 진한 이래의 제국들은 대표적으로 중앙집권적 통제장치로서의 관료제와 군대체제를 통해 오늘날의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구석구석을 통제하고 신민들을 지배하였다. 글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계장치를 구축한 것이다. 이들은 이 ‘거대 기계’를 활용해 신민들의 노동을 조직하고, 거대한 무덤을 짓고,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기 위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멈퍼드의 문제의식에 따르면 인류는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 ‘거대 기계’의 압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참혹한 이미지와 스토리들이 매일처럼 전 세계의 미디어들을 장식하고 있지만 인류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구축할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전쟁의 참혹함은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시대가 된 듯하여 슬프다. 현 시대에 정말로 의문인 것은 모두가 비극으로 인정하는 전쟁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거대한 기계에 대한 굴종을 끝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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