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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의 비극적인 삶 소설 속 이야기로 태어나다
목포문학상 수상작가
범현이 소설가 첫 창작집
재능·빈곤 사이 괴리
예술인 이야기 8편 수록

2020. 11.01. 17:57:00

‘여섯 번째는 파란’ 범현이 지음/문학들
화가들의 삶은 그리 평탄치만은 않다.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며 예술가로 살아남고 싶어도,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면 자신의 예술세계만을 고집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화가들의 비애를 소설로 탄생시켜 엮은 책이 나왔다. 바로 범현이(사진) 소설가의 ‘여섯 번째는 파란’이다. 이 책은 범 작가의 첫 창작집이다. 각각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예술을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이들이다.

8개의 단편소설로 이뤄진 대부분의 작품이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천형(天刑)을 타고난 작가의 이야기(‘목포의 일우’)를 비롯해 그림과 떨어져서는 생계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 포기할 수 없는 우울한 상황(‘여섯 번째는 파란’, ‘안나는 없다’), 넓게는 그림판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암묵적이고 비극적인 상황(‘뫼비우스의 띠’, ‘소리’)을, 또는 독재 타도를 위해 걸개그림 작업과 포스터 작업을 하고 시내 전역에 포스터를 붙이고 돌아다니는 스무 살의 피 끓는 청춘(‘가죽가방’) 등을 글로 그렸다.

2019년 목포문학상을 수상한 ‘목포의 일우’는 남종산수화의 대가 남농(南農) 허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치(小癡)와 미산(米山) 잇는 가계에서 태어났다. 그림을 팔자로 타고난 이들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어찌 그림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아버지 미산으로부터 가난한 화가의 길을 가지 마라는 유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림을 그린다.

어렸을 때부터 사무쳤던 가난에 자신을 내던진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과 스물여덟의 나이에 시작된 골습(骨濕)도 그의 열정을 막아낼 수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남종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남종화였다. 길고 긴 통증과 창작의 번민 속에서 그림의 신에게 다리 하나를 제물로 바쳐 마침내 신남화풍을 그려 내는 데 성공한다. 그 작품이 바로 ‘목포의 일우’다.

표제작 ‘여섯 번째는 파란’은 아주 고통스럽고 역설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처지를 견뎌 내는 여성의 이야기다. 문중의 족장이 되면서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 남편과 미술관 일을 그만두려는 딸을 둔 화자는 가계의 생계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

미대에 들어가 코피가 날 정도로 그림을 그렸지만 소질이 없어 매번 혹평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림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업으로 삼았다. 하지만 글마저도 흐름이 막힐 때면 판화가이자 타투이스트인 친구 은종을 찾아간다. 은종은 마치 막힌 혈을 뚫듯 화자의 몸에 나비 타투를 새긴다. 딸아이를 낳는 날에 사고로 남편을 잃은 은종은 생계를 위해 판화를 그만두고 타투를 선택했다. 과연 어느 삶이 더 나은 삶일까. 택할 수는 없다. 고통의 질적 수준은 증명할 수가 없다.

두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지만 예술에 대한 순정이나 섬세함, 고고한 정신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범현이 작가는 이 작품집을 통해 “현대사회의 각종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미친 세상에 저항할 감각을 만들어 내는 작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김주선 문학평론가는 “나의 일부를 잘라 내어도 끝끝내 예술을 고집하는 존재가 바로 예술가다. 예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타협이야말로 예술가의 윤리이자 자유의 시작”이라며 “범현이에게 예술가의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평했다.

범현이 소설가는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전시서평과 전시기획 전문가다. 오월미술관을 운영 중이며 예술문화연구회 대표로 민중미술 아카이브에 주력하고 있다.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문학창작기금 수혜와 2019년 목포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2016년 무등일보로 등단했으며 2018년 100인의 작업실 탐방 에세이 ‘글이된 그림들’을 출간했다. 한국작가회의, 광주전남작가회의, 광주전남소설가협회, 민족미술협의회 회원이다./정겨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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