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토미쿠스’ <위키피디아 검색>

▲살바도르 달리 <위키피디아 검색>

간혹 대화를 하다보면 하나의 단어가 갖는 의미가 여러 가지라서 의사 전달에 착오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이야기할 주제인 ‘꿈’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꿈이라고 쓰지만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와 잠을 자면서 접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가리키는 단어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이 두 의미 중에서 이번 달에 살펴볼 주제는 바로 ‘잠이 들면 찾아오는 꿈(夢)’이다.

꿈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면, 일단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름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본 공포 영화 때문에 무서운 꿈을 꿨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꿈속에서는 만나고 싶었던 연예인을 만난다거나, 산소호흡기 없이도 깊은 물 속에서 긴 시간 동안 잠수가 가능해지는 등 현실적이지 않은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비록 우리의 의식이 깨어있을 때는 결코 쉽게 경험할 수 없을 테지만 꿈속에서 이런 일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일어나는 것임은 분명하다.

일찍이 미술사에서도 꿈과 무의식에 관해 고민했던 작가들이 있었으며, 이 화가 그룹을 사람들은 ‘초현실주의’라 불렀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1차 대전부터 2차 대전 이후까지 근 20년간 일어났던 이들의 예술 운동은 ‘마치 꿈의 세계처럼 현실에는 있지 않은 일들을 그림 속에 표현해낸 것’이 특징이다. 이번 시간에는 이 초현실주의 작가 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꿈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은 이성으로 점철된 시기였으며 그들이 느끼고 경험해야 했던 것은 문명의 이기심이 빚어낸 ‘전쟁’이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람이 죽어가는 현실 속에 과연 내일이란 미래가 그들에게 있었을까? 아마도 그들에게 보장되지 않은 내일은 무의미한 것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피할 도피처가 필요했을 것이고 도피처를 찾지 못한 이들은 절망 속에 죽음을 기다리며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어떤 것에도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허무주의’에 빠져들었고, 화가들은 ‘이성이 침범하지 못할 무의식 속으로 도피’를 시도했다.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표현해낸 초현실주의는 의식과 현실을 중심에 둔 사실주의와 확연히 구분된다. 또한 근대 이후 다방면에 영향을 끼쳤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초현실주의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달리 또한 프로이트를 존경해 그의 많은 것들을 그림에 녹여냈다고 전해진다.

이 스페인 태생의 살바도르 달리는 특히 독특한 아이디어로 상상력의 대가라 불리기도 한다. 천재 아니면 광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상상력뿐만이 아니라 너무나 독특했던 생각 그리고 기인 같은 행동 때문에 그는 미치광이라고까지 여겨지기도 했었다.

그의 작품 중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이라는 작품은 우리 눈에 가장 잘 익은 작품이다.

그림 중앙에 녹아내리는 살덩어리는 얼핏 보아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데, 눈썹과 코, 혀, 입 등이 붙어있어 얼굴 거죽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시계 하나가 흐늘거리며 놓여 있다. 왼쪽 각진 땅덩어리 위에 뿌리를 내린 썩은 나뭇가지에는 시계가 액체마냥 흘러내리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빨간 시계 위 징그럽게 우글대는 개미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 작품은 친구들과 극장에 놀러 가기로 약속을 한 달리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와 혼자 집에 남아있던 차에 그려진 작품이다. 기운이 없이 작업실로 향한 그는 어느새 절벽과 모래사장 그리고 바다가 있는 배경 그리기에 빠져들었다. 바다와 사막 경계 어디쯤으로 보이는 그곳은 자신이 살았던 카탈루냐의 크레우스를 모티프로 한 곳으로 손쉽게 배경은 완성됐지만 화면 중앙에는 무엇을 그려 넣을까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고 한다. 결국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자 불을 끄고 나가려던 찰나 머리속에서 불현듯 며칠 전 봤던 ‘뜨거운 태양 아래 녹고 있던 까망베르 치즈’가 떠올랐다. 그리고 달리는 자신의 ‘무의식에 떠오르는 기물들’을 마치 녹아내린 치즈처럼 표현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항상 그림을 그리기 전에 독특한 행동을 취했다고 한다. 이것은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방법으로도 볼 수가 있는 데, 무의식 상태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잡아내기 위해서 손에 스푼을 들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다 스푼이 손에서 떨어지면 놀라 잠이 깼고 깨자마자 연필을 들고 꿈에서 본 이미지를 스케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꿈을 훔쳐 오는 방법처럼 보이는 행위를 달리는 ‘손으로 그린 꿈의 사진’(hand-painted dream photographs)이라고 불렀다.

평소 프로이트를 존경했던 달리가 그림 속에 자신의 무의식을 표현해 놓은 기물로는 ‘시계’를 들 수 있다. 축 늘어진 시계가 걸려있는 나무는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다. 하지만 마른 장작처럼 죽은 나무는 무언가 사연을 가진 듯 보인다. 그리고 시간을 상징하는 시계는 달리에게 있어서 지우고 싶은 과거를 나타낸다. 밝아 보이는 달리의 외관과 다르게 그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던 달리를 부모 또한 형처럼 대우했다. 어린 나이에 이해하기 힘들었을 죽음의 무게, 그리고 부모님의 슬픔 등이 가득 담겨있는 ‘과거의 시간’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달리였다. 마치 기억을 지워내듯 그림 속 시계는 치즈처럼 녹아내리고 있는 중이다. 또한 빨간 시계 위의 개미는 벌레를 병적으로 무서워했던 달리가 불안과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 그려 넣은 것으로서 그의 다른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독특한 사진작품을 하나 예로 들어보려고 한다. ‘아토미쿠스’(Atomicus·1948)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은 당시 발표돼 이슈가 됐던 ‘원자 현미경 사진’을 보고서 영감을 받은 달리가 사진작가 필립 할스만(Philippe Halsman)과 함께 만든 초현실적인 사진이다.

이현남 <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이건 합성이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별난 사진이다. 그러나 이 사진에는 전혀 기술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니 더욱 놀랍지 않은가? 당시에는 이만한 기술력이 없었을 뿐더러 사진의 과정을 알고서 보면 그 재치에 웃음이 절로 난다.

점프를 할 때 가면이 벗겨지고 진정한 대상의 자아가 표면에 떠오른다고 믿고 있던 사진 작가의 지시대로 달리는 연신 점프를 해댔을 것이고, 사진 속 왼편의자는 사진을 찍는 내내 화면 밖에서 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허공을 가르는 고양이와 물은 쉽게 그 과정이 상상이 가질 않는데 실제로 고양이를 던지고 물을 뿌려대며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순서에 맞춰 뛰고 던지고 뿌리고….

재미있지 않은가? 이처럼 무의식이 전해주는 목소리를 별난 생각으로 풀어내곤 했던 달리의 유쾌한 상상력이 답답하고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을 독자들의 마음속에 한 조각 심심한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