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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나PD의 보통날]오케스트라 분석 보고서

2019. 03.18. 19:14:59

오늘 보고드릴 내용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성향을 분석한 내용입니다. 의뢰자는 ‘오케스트라를 사랑하는 모임’입니다. 이들은 오랜 기간 한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지켜봐 왔습니다. 이제 그들의 관심은 연주를 넘어 오케스트라 단원들 개인에게 뻗어나가 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에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꽤나 신비로운 대상으로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오케스트라 연행의 특성상 관객들은 연주자들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연주자들은 악보와 지휘자만 응시할 뿐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눈을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의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주자들은 무대에 올라와 마치 객석에 아무도 없는 듯 행동을 하다가 지휘자의 허락이 있을 때에만 관객들과 인사를 나눈다고 합니다. 또 다시 의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을 TV 속 연예인보다도 더 제한된 정보와 친밀함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지휘자의 손짓에 의해서만 관객들과 교통할 수 있는 이 수줍고 베일에 싸인 집단이 그저 좋고, 그 신비로움이 오히려 그들의 상상력을 추동한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분석 의뢰가 있기 전, 의뢰자 나름의 조사를 실시해 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조사내용은 주로 다음과 같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키가 크신 그 분 말이에요. 그 분은 무대에 입장할 때 항상 등을 아주 곧게 펴고 다른 분들보다 살짝 느린 템포로 걸어 나오세요. 저는 그 분이 아주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라거나, ‘그 관악기를 부시는 ○○연주자 말이에요. 그분은 악기를 세게 불 때 남들보다 얼굴이 더 빨개지는 게 아무래도 술을 좋아하는 분 같아요. 악기 연주할 때 표정을 보면 무척 재미있고 유쾌한 분일 것 같아요’라는 식의.

그들은 주로 오케스트라 단원 개인의 행동관찰을 실시해 왔으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본질을 알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정된 정보를 가공하는 의뢰자의 상상력은 가히 대단했으나 의미 있는 정보라고 하기에는 역시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 전반의 성향을 알고자 하는 의뢰자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악기별 집단 표본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연주자 대부분이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악기를 연주해 왔으며 특정한 사운드 스케이프에 오랜 시간 노출됐고, 이 사운드 스케이프가 개인 성향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가설에 기초한 접근입니다. 분석결과 가설이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뢰할만한 정보원에 의하면 악기 별로 해당악기를 연주하는 단원들 사이에 공통된 성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큰 범주로는 현악기와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주로 내향적인 성향을 띠며, 금관악기 연주자들은 외향적인 성향을 띈다고 합니다. 악기별로는 높은 음역대의 소리를 섬세하게 연주해야 하는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경우 자신감이 넘치는 동시에 예민한 성향을 갖고 있으며 반면, 저음역대인 첼로와 베이스 연주자들은 차분하고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플루트는 화려한 솔리스트인 만큼 도도하고 화려하며, 오보에는 음정을 조율하는 중책을 맡은 만큼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고 합니다. 밝은 음색으로 멀리까지 소리를 내보내는 트럼펫 연주자들은 활달하고 돋보이기 좋아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아, 그러니까 신뢰할만한 정보원이 누구냐고요? 아 네, 그러니까 음악대학에서 수년간 조교로 일해 온 정보원 K입니다. 그녀는 수년간 수백명의 악기별 전공자를 만나왔으며 악기별 집단 표본을 분석하고 검증해 왔습니다. 아 네, 그러니까 혈액형별 특징 같은 이야기를 분석보고라고 할 수 있냐고요? 아 네, 그래서 좀 더 믿을만한 정보수집을 위해 조사원 J를 한 오케스트라에 투입해 현장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녀는 지난 5년간 한 오케스트라의 공연기획담당으로서 위장 근무했습니다. 물론 그녀의 본래 임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단원 면접 분석이었습니다. 지난 5년간 조사원 J는 단원 대부분과 일대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녀의 분석 보고입니다.

‘오케스트라엔 분류 가능한 15개 이상의 악기가 있지만, 분류 불가능한 80개 이상의 인격이 있다. 분석은 분류를 조건으로 하기에 나는 일찍이 이들의 성향을 분석하기를 포기했다. 나의 관심은 ‘조직화 할 수 없는 80개의 인격이 어떻게 하나의 조직을 유지해 왔고, 하나의 관현악을 만들어 내는가’로 옮겨졌다. 관점을 옮기니 오히려 80개 인격 속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단 하나의 성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든 검증된 법(악보)을 지키며, 실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리더(지휘자)를 따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규칙이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들은 타당한 법과 납득할 만한 리더 앞에 비로소 선량한 시민이 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하나 광주시립교향악단 공연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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