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페 누르의 설치 작업

강미미作 ‘네 개의 눈, 한 개의 몸’

광주의 역사와 흔적,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은 작품들이 모였다. 광주 동구를 상징하는 장소와 기억을 예술로 풀어낸 이번 전시에는 지역 작가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중심 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함께해 시선을 끈다.

‘2025 미로예술인레지던시 결과보고전 공존의 지도 ; 하나의 항로, 여러 갈래의 길’이 오는 7일까지 미로센터와 예술공간 집에서 열린다. 전시는 동구가 주최하고 미로센터·예술공간 집이 주관했으며, 콜렉티브오피스·루앙매스56·아라컨템포러리의 협력으로 마련됐다.

지난 5월부터 미로센터에 입주해 작업을 이어온 강미미, 김자이, 이세현 작가와 10월 광주를 방문해 충장22에 머물며 지역의 역사·문화·환경을 탐색한 인도네시아 작가 아낭 삽토토, 아페 누르까지 총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각자의 예술 세계를 ‘공존’이라는 주제 아래 엮어낸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과 감각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지점을 드러낸다.

특히 인도네시아 작가들은 레지던시 기간 동안 5·18기록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5·18기념공원, (구)국군병원, 구도청, 5·18구묘역 등을 찾아 광주의 역사와 정신을 체감했다. 또한 광주비엔날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양림동, 광주시립미술관, 예술의거리 등 예술현장을 두루 살피며 도시의 예술적 맥락을 체험했다.

예술공간 집에서는 협업 작업과 영상 작품이 눈길을 끈다. 김자이 작가와 아낭 삽토토는 루앙매스56 레지던시에서 인연을 맺고 ‘가족의 레시피’를 매개로 한 공동 작업을 선보인다. 어머니의 김치 레시피가 등장하는 영상은 한 끼의 음식 안에 깃든 기억과 관계의 이야기를 전하며, 전시 공간에 따뜻한 온기를 더한다.

이세현 작가는 전일빌딩 9층의 리모델링 전 내부를 담은 2017년 사진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한다. 대표 연작 ‘Boundary’와 ‘에피소드’ 시리즈를 함께 선보이며, 역사적 사건의 잔흔과 그 안에 남은 이야기들을 시각화했다.

이에 호응하듯, 인도네시아 작가 아페 누르 역시 광주의 장소성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풀어냈다. 그는 한강의 소설에 등장하는 광주의 장소들을 걸으며, 그 기억 위에 자신의 경험을 포개어 작품으로 전환했다. 국군병원 등지에서 채취한 흙을 물감처럼 사용하거나 나무판에 총탄을 연상시키는 구멍을 뚫어 빛을 투사하는 설치작업은 광주의 오월을 떠올리게 하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미로센터에서는 작가들의 또 다른 작업들이 이어진다. 김자이·아낭 삽토토의 ‘모든 가족의 음식마다 그 집만의 맛과 삶이 담겨 있다’는 주제의 앞치마 작업에는 한국의 김치와 인도네시아 ‘Javanese noodles’이 재료와 음식으로 표현돼 문화적 공존을 상징한다.

강미미 작가는 자연과 생태에 주목한 설치작업을 소개한다. 나무 밑동을 엮어 만든 대형 삼각형 구조물 등 버려진 자연의 잔해를 다시 조합한 설치, 여러 생명체가 융합된 듯한 판화 작품 등은 인간에 의해 버려지고 남겨진 존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문희영 예술공간 집 대표는 “서로 다른 예술가들이 한 항로에서 마주한 시선과 감정을 담아낸 전시”라며 “광주의 땅과 사람, 그리고 시간을 매개로 한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예술을 통해 다시 이어지는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