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과 작은 결혼식 / 천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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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26(일) 18:18 가+가-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일주일 전쯤 신석정 시인(1907-1974)께서 말년까지 사셨던 ‘비사벌초사’(전주시 미래유산 14호)에서 최근 큰아이의 결혼식을 치렀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공간에 뭔가를 설치하고 손님을 초대해 식을 올린 것은 아니었다. 인연의 의미를 소중하게 새긴 귀한 공간에서 결혼의 의미를 새기고 양가 직계가족 6명만이 단정한 옷을 입고 일상적인 사진을 몇 장 찍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고 싶다고 고택을 지키고 계시는 분께 부탁을 드렸고 기꺼운 마음으로 허락해주셔서 이뤄진 일이었다.
점심을 조촐하게 나누는 것으로 결혼식은 끝났고 오후에는 아이와 사위가 캠핑장을 빌려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으로 마쳤다. 친구들 모두 신선하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결혼식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큰아이가 결혼하기로 하면서 마음이 칠흑으로 덮이고 큰 쇳덩이가 떨어졌다. 아이의 결혼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예식장을 잡고 청첩장을 보내고 주변에 폐를 끼치는 세간의 일이 반갑지 않아서였다. 아이들과 마주 앉았다. 아이들도 그런 결혼식을 원하지 않았다. 덕분에 ‘작은 결혼식’으로 결정돼 진행된 일이었다.
아이의 결혼에 대해 묻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어서, 몇몇 자리에서는 청첩장을 만들지도 연락을 돌리지도 축의금도 받지 않겠다고 미리 밝혔다.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다. 번거로운 결혼식에 수천만 원을 쓰고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극화되고 있는 현실이 싫었을뿐이다.
사회적 의례는 극화(劇化)의 역사를 밟았다. 형식(예법)은 내용에 권위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시간이 흐르면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단단해진다. 내용이 부실해지거나 사라져도 형식은 허물어지지 않고, 오히려 빈약한 내용을 감추기 위해 더 스펙터클해진다.
기 드보르(1931-1994)는 『스펙터클의 사회』(1967)에서 스펙터클을 “종교적 환상의 물질적 재구성”이라고 했다. ‘종교적 환상’은 ‘의례’를 유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유지를 위해 물질적 구성도 필요하지만, 결혼식이 내용과 무관하게 ‘물질적’인 측면이 점점 더 강조되고 이벤트로 무대로 꾸며지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
막스 베버(1864-1920)는 근대 사회를 ‘탈마술화’로 나아가는 사회로 이해했는데 그런 이해로 본다면 ‘종교적 환상’은 마술화 사회(근대 이전)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종교적 환상’을 무조건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예식산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다. 의례의 중심인 내용을 존중하지 않고 과정이 과도하게 물질적으로 치닫는 걸 경계하자는 것 뿐이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은 상품이 사회생활을 총체적으로 점령하기에 이르는 계기가 된다. 상품과의 관계가 가시화되며, 사람들은 그것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보는 세계는 상품 세계이다. 현대 경제의 생산은 상품 독재의 범위와 강도를 확장시키고 있다.”고 잇는다. 정말 그렇다. 요즘 결혼식은 시각적 효과에 무게를 둔 기획 상품이다.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들은 경쟁이 붙어 점점 강도를 더해간다. 근원에는 이미지의 외면화를 추구하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SNS와 미디어는 욕망을 더욱 부추긴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은 오히려 물질적으로 표현된 하나의 실질적인 세계관이고, 또한 대상화된 하나의 세계관이다.”라고 덧붙인다. 시각적으로 드러난 모든 것이 실행자가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를, 어떻게 사유하는 존재인가를 정확히 나타낸다. 의례는 이벤트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내용(의미)을 새기는 것에 있다. 과도함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의미의 땅을 침식하기 때문이다.
작은 결혼식은 침식에 대한 우려이고, 스펙터클 경연장이 된 결혼문화에 대한 작은 반발이고, 사랑의 의미에만 집중하려는 소박한 문화적 선언이다. 모두 같은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건 아니다. 선택의 문제다. 경제적 선택만이 아닌 삶의 태도를 선택한 일이지만, 작은 결혼식도 시간이 지나면서 상업적 취향이나 브랜드로 소비될 위험이 있다. 상업 자본은 어느 것이든 가리지 않고 내용을 형식으로 덧칠하는 일을 탁월하게 해낸다.
그것은 후일의 일, 지금은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때다. 일부라도 그렇게 한다면 세상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치른 일이다.
점심을 조촐하게 나누는 것으로 결혼식은 끝났고 오후에는 아이와 사위가 캠핑장을 빌려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으로 마쳤다. 친구들 모두 신선하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결혼식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아이의 결혼에 대해 묻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어서, 몇몇 자리에서는 청첩장을 만들지도 연락을 돌리지도 축의금도 받지 않겠다고 미리 밝혔다.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다. 번거로운 결혼식에 수천만 원을 쓰고 영화나 연극의 한 장면처럼 극화되고 있는 현실이 싫었을뿐이다.
사회적 의례는 극화(劇化)의 역사를 밟았다. 형식(예법)은 내용에 권위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시간이 흐르면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단단해진다. 내용이 부실해지거나 사라져도 형식은 허물어지지 않고, 오히려 빈약한 내용을 감추기 위해 더 스펙터클해진다.
기 드보르(1931-1994)는 『스펙터클의 사회』(1967)에서 스펙터클을 “종교적 환상의 물질적 재구성”이라고 했다. ‘종교적 환상’은 ‘의례’를 유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유지를 위해 물질적 구성도 필요하지만, 결혼식이 내용과 무관하게 ‘물질적’인 측면이 점점 더 강조되고 이벤트로 무대로 꾸며지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다.
막스 베버(1864-1920)는 근대 사회를 ‘탈마술화’로 나아가는 사회로 이해했는데 그런 이해로 본다면 ‘종교적 환상’은 마술화 사회(근대 이전)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종교적 환상’을 무조건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예식산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다. 의례의 중심인 내용을 존중하지 않고 과정이 과도하게 물질적으로 치닫는 걸 경계하자는 것 뿐이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은 상품이 사회생활을 총체적으로 점령하기에 이르는 계기가 된다. 상품과의 관계가 가시화되며, 사람들은 그것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보는 세계는 상품 세계이다. 현대 경제의 생산은 상품 독재의 범위와 강도를 확장시키고 있다.”고 잇는다. 정말 그렇다. 요즘 결혼식은 시각적 효과에 무게를 둔 기획 상품이다.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들은 경쟁이 붙어 점점 강도를 더해간다. 근원에는 이미지의 외면화를 추구하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SNS와 미디어는 욕망을 더욱 부추긴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은 오히려 물질적으로 표현된 하나의 실질적인 세계관이고, 또한 대상화된 하나의 세계관이다.”라고 덧붙인다. 시각적으로 드러난 모든 것이 실행자가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를, 어떻게 사유하는 존재인가를 정확히 나타낸다. 의례는 이벤트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내용(의미)을 새기는 것에 있다. 과도함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의미의 땅을 침식하기 때문이다.
작은 결혼식은 침식에 대한 우려이고, 스펙터클 경연장이 된 결혼문화에 대한 작은 반발이고, 사랑의 의미에만 집중하려는 소박한 문화적 선언이다. 모두 같은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건 아니다. 선택의 문제다. 경제적 선택만이 아닌 삶의 태도를 선택한 일이지만, 작은 결혼식도 시간이 지나면서 상업적 취향이나 브랜드로 소비될 위험이 있다. 상업 자본은 어느 것이든 가리지 않고 내용을 형식으로 덧칠하는 일을 탁월하게 해낸다.
그것은 후일의 일, 지금은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때다. 일부라도 그렇게 한다면 세상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치른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