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던 장판이 또 젖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는 빗소리만 들려도 치가 떨릴 지경이에요.”

4일 오전 8시께 광주 북구 신안동 신안교 인근. 전날 시간당 80㎜에 달하는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주택가 곳곳에서는 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복구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날 중흥동 건우봉사단, 광주북구동신지역자활센터, 북구청 관계자 등 15명은 ‘행복둥지 사랑의 집수리’ 봉사의 일환으로 보름 전께 내린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신안교 인근 주택을 찾아 도배·장판 교체를 위한 사전 정비 작업에 나섰다.

내리는 비에 우비와 목장갑을 착용한 봉사자들은 진흙 묻은 장판과 생활 집기 등을 밖으로 옮기고, 집안의 흙탕물을 쓰레받기와 양동이로 퍼내며 분주히 움직였다.

수해로 음식물 쓰레기 등이 뒤섞이며 현장은 악취가 퍼졌고, 습한 날씨 속에 봉사자들의 이마엔 땀이 흘러내렸다.

인근 다른 주택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외벽엔 진흙과 잡초가 엉겨 붙어 있었고 마당과 바닥은 여전히 흙탕물에 잠겨 있었다.

집 한쪽에는 젖은 폐박스와 슬리퍼, 신발장이 흐트러진 채 놓여 있고, 창고 안에는 흠뻑 젖은 옷가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세탁기와 선풍기 등 가전제품 곳곳에는 흙이 묻어져 나왔다.

집주인 임용호(60)씨는 “지난달에 집이 침수돼 겨우 정리하고 장판과 벽지를 말리던 중이었는데 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며 “그때는 물이 가슴까지 차올라 창문틀을 붙잡고 있다가 겨우 피신했었다”고 말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이어 “10년 넘게 이곳에 살면서 비만 오면 침수 걱정을 한다”며 “요즘은 날씨 앱부터 확인하고 빗소리만 들어도 잠을 설칠 정도로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이 지역은 지난달 17일부터 사흘간 광주·전남에 최대 6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주택과 상가, 도로 곳곳이 물에 잠겼던 곳으로 전날 오후부터 내린 괴물폭우에 또다시 수해를 입었다.

특히 인근 천변 주변에 주택가로 물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차수판이 설치돼 있는데 벽 하단의 배수 구멍으로 물이 제때 빠지지 못하면서 침수를 더 키웠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또 지난달 폭우에 차수판 일부가 무너졌는데 그 덕에(?) 물이 빠져나가면서 피해가 오히려 줄었다고 부연했다.

주민들은 전날 폭우로 물이 다시 차오를까 우려해 빗물받이를 정비하고 마을 주변을 살폈으며 일부는 오후 10시께 용봉초로 긴급 대피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거센 빗소리에 불안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일부는 새벽에 비가 그친 뒤 집으로 돌아와 침수 피해 현장을 마주했다. 때문에 주민들은 반복되는 수해로 두려움을 호소했다.

50년 넘게 인근에 거주한 김영충(80)씨는 “비가 내린 지 30분도 안 돼 허벅지까지 물이 찼다”며 “그때는 통장도, 구청 직원도 보이지 않았고, 주민들끼리 서로 ‘대피하라’고 소리치며 겨우 위기 상황을 넘겼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주민 이모(50대·여)씨는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날씨부터 확인하고, 빗소리만 들리면 심장이 요동친다”며 “피해가 계속 반복되는데도 달라진 게 없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성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