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끄고 밝아진 방
누가 나를 들여다 본다

만지고 부수다가
구석으로 밀기도 하고

암호를 기억하느라
발끝까지 뒤적인다

잊어가는 방식에 대해
불 켜고 어두워진 방

아무도 보이지 않아
이름만 불러본다

어떻게 그림자들을
놓을까요, 서로를
(시조집 ‘종소리에는 마디가 있다’, 고요아침, 2024)

[시의 눈]

광활한 우주적 공간에서 최단거리상에 놓여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일 터, 물리적 거리도 그렇고 심리적 거리도 그렇다. 놀랍게 그런 나 자신이 어느 순간 가장 멀어 보일 때가 있다. ‘나도 내 자신을 모르겠다.’ 이런 넋두리가 그런 자아를 투영한다. 자기탐색과 자기성찰, 이 장면은 자신과의 대화를, 자신과의 적극적 대면을 암시한다. ‘만지고 부수다가/ 구석으로 밀기도 하고// 암호를 기억하느라/ 발끝까지 뒤적인다’. 가까운 듯 멀어 보이는 자신과의 치열한 대면, 이 장면은 어둠 속에 가려진 존재의 의미를 캐는 철학적 시간이다. 지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본다. 위치를 탐색하며 불확실성을 극복해간다. 이 모두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자 꿈틀거리는 가열찬 실존의 탐색 시간이다. 자기정체성 확인, 이는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세계에 보여주거나 드러내려는 인간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서의 스스로의 가능성을 정교하게 짚어갈 미의식의 작업임을 환기시킨다. 4음보, 3장의 응결미는 완숙한 사유를 현시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최양숙 시인은 1999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다. 아르코 지원 선정, 율격, 후조 동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윤삼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