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그것이 만들어낸 문명이 없는 자연 속에서 나는 압도적인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잠시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오래 머무르며 인간종種으로서 작고 단순하고 겸손해지는 과정을 겪어보기를 원했다.”
생명의 가장 깨끗하고 단순한 출발 앞에 선 한 소설가의 투명한 기록이 책으로 발간됐다.

일상의 순간에서 길어올린 깊은 통찰과 산뜻한 위트로 인간 내면의 지형도를 섬세하게 그려온 작가 김금희의 세 번째 산문집 ‘나의 폴라 일지’(한겨레출판刊)다.

남극 기지 방문은 쉬이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여러 경로로 시도했으나 늘 실패했고 작가는 마침내 특별 취재기자 자격을 부여받음으로써 남극에 갈 수 있게 됐다. 특파원으로 위촉된 뒤에는 극지연구소에서 파견하는 하계 연구 대원이 받는 훈련에 준하는 생존과 안전 교육 과정을 여름 내내 수료한 뒤, 2024년 2월1일 비로소 남극 땅을 밟게 됐다.

근 한 달 동안 남극 세종 기지에 체류하며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대면함은 물론 극지에서 행하는 연구와 이를 수행하는 세계 각국 사람들을 꼼꼼히 취재한 결과물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책은 총 5부로 이뤄졌다. 1부엔 긴 시간 염원했던 남극 기지 방문에의 꿈이 이루어지기 전 지난한 준비 과정과 입남극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작은 눈사람들의 세상’이라는 제목의 2부에선 한국이 주도해 제정한 최초의 남극특별보호구역, 아스파인 펭귄 마을에 방문하는 일정이 소개된다. 2인 1조로만 움직여야 하는 기지에서 작가는 버디와 함께 그토록 보고 싶었던 펭귄과 물개를 조우할 수 있었다.

3부 ‘대기의 강’에서는 세종 기지 안 식당 셰프의 출중한 음식 솜씨로 나날이 지방을 축적해가는 평화로운 일상과 각자의 연구 분야를 발표하는 세미나를 앞두고 흐르는 긴장감을 목도한다.

4부 ‘명명의 세계’에선 이름을 붙여 존재를 인식하는 행위의 고귀함을 역설한다. 기지 역사박물관을 둘러본 뒤 최초 대원들의 ‘휴머니티’에 벅차오름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5부 ‘나의 폴라 속으로’에서는 풍광 맛집이라는 전망대로 이동해 백두봉에까지 오른 여정이 등장한다. ‘인간’보다 대륙 자체의 ‘자연성’이 앞서며 그 안에서 인간은 모두 다를 것 없는 종이라는, 남극의 우정이 미래에 대한 새로운 힌트일지 모른다고 상상하며 작가는 세종 기지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펭귄 마을에 들러 녀석에게 마침내 안녕을 고한다.

김금희 작가는 “남극에서 내 시간은 여행도 취재도 연구도 아니라 ‘사는 것’이었다. 관계를 만들고 대화를 나누고 호의, 기쁨, 감동과 경이, 긴장, 때로는 불안과 불쾌 같은 순간순간의 감정을 지닌 채 하루하루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