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일상을 보내지만 내일, 더 나아가서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줄었습니다.”

26일 영광 주민 이송(57·사진)씨는 신분이 생긴 후 3개월여간의 삶에 대해 이 같이 소회했다.

50여년간 무적자(無籍者)로 살아오다 지난 9월 광주가정법원이 성과 본 창설허가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대한민국 국민임을 인정받은 이씨는 이전처럼 영광 한 마을에서 지내고 있다.

주로 밭일을 하기에 동절기를 맞아 임시 휴업 상태이지만, 이날도 눈을 뜨자마자 10여년째 일하고 있는 대파 농장에 다녀왔다는 이씨는 그 이유에 대해 “산책 겸”이라면서도 “그래야만 마음이 편하다”고 다소 겸연쩍은 듯 웃었다.

이씨의 집도 지난 6월18일 처음 찾았을 때보다 근사해졌다. 공간 자체가 커진 건 아니었지만, 가스레인지 등 고장 났던 가전제품들은 전부 새것으로 바뀌었고 이전에는 없었던 책상 등 새로 놓인 가구들도 눈길을 끌었다.

창문 안으로 여과 없이 내리쬐던 햇볕은 새로 달린 커튼 덕에 조절이 가능해졌고, 매트리스에 쌓여 있던 옷가지들은 행거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이씨가 무적자였을 때부터 그를 도와 온 영광군사회복지협의회(회장 임두섭)와 영광군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터(센터장 남궁경문) 덕이다.

이들 단체를 비롯해 영광군 등은 신분이 생긴 이씨가 이전과 달리 받을 수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수당 등 법적 혜택에 대한 신청이 들어오면 속도감 있게 처리할 방침이다.

아직까지 이씨에 대한 기초생활수급자·지적장애인 지정 등의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건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을 두고 벌어진 해프닝 때문이다.

지난 9월30일 이씨는 영광군 염산면사무소를 찾아 가족관계등록창설신고서를 작성, 제출했다. 염산면사무소는 이 서류를 바탕으로 주민등록증 신청 절차를 밟아 임시 신분증(주민등록증 발급신청 확인서)을 발급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여가 지나서 이씨의 특정후견인에게 법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은 행정 기관이 아닌 법원의 소관이라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임시 신분증은 무효가 돼버렸고, 이씨는 광주가정법원에서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다행히 11월25일 광주가정법원이 신청 당사자 심문 후 ‘허가’ 결정을 내리면서 주민등록을 위한 사전 절차는 최종 마무리됐고, 이씨는 이달 초 다시 한 번 염산면사무소를 찾아 주민등록증 발급을 신청했다.

현재 실물 주민등록증이 발급은 됐으나, 염산면사무소에 도착하지 않아 이씨는 하루빨리 수령할 수 있길 기다리고 있다.

이송씨는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을 때 뭔가 잘못되는 건 아닐지 두려웠다”면서 “주민번호 뒷자리가 바뀐 임시 신분증을 받았을 때 마음이 놓였다.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는 “신분이 생겨서 좋지만, 일상은 크게 바뀌질 않았다”면서도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을 할 것이고, 이송이란 내 이름으로 이웃들을 도우며 살 것”이라고 힘 줘 말했다.

끝으로 이씨는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해지고, 노후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된 게 가장 큰 변화”라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무적자들도 하루빨리 발견되고 구제됐으면 한다”고 소원했다.

/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