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사라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탐구하며 디지털 시대 인간 경험의 즉흥성과 유동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김호빈 작가 개인전 ‘Film-Literature / Archival Ghost’가 오는 8일부터 21일까지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두 개의 독립적인 작업을 하나의 개인전으로 결합한 것으로, 디지털화된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가진 본질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작가는 기록된 과거와 현재의 흐름 속에서 기억과 사라짐, 그리고 예술적 자유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제시해오고 있다.

첫 번째 작업인 ‘Film-Literature’는 요나스 메카스의 필름 다이어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가가 여행 중 사용했던 기기를 통해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삶의 순간들을 4채널 비디오 설치작업으로 담아냈다.

이 작업은 소설 창작 방식 중 ‘팬서(pantser)’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플로터(plotter)가 철저히 계획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라면, 팬서는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가는 계획 없는 삶을 기록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즉흥적 서사를 구성한다.

해당 작품은 2022년 겨울부터 시작된 작가의 개인적 여정을 담고 있으며, 2025년 겨울까지 이어지는 장편 다큐멘터리로 완성될 예정이다.

두 번째 작업 ‘Archival Ghost’는 기록과 보존 속 사라짐의 아이러니를 탐구한다.

자크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 개념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비디오 영상이 아닌 작가, 장소, 날짜, 설명만으로 구성된 메타데이터를 활용해 작품의 본질을 탐구한다. 이는 디지털 및 제도적 시스템이 예술을 정의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관객은 메타터이터의 빈 공간을 통해 아카이브가 예술을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과정을 체감하게 된다. 이 작품은 기록이 무엇을 기억할지 결정하고 동시에 무엇을 망각할지 형성하는 아카이브의 능동적 역할을 성찰한다.

특히 디지털과 제도적 시스템이 예술의 덧없음과 즉흥적 본질을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를 부각하며, 아카이브의 부재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존과 소멸의 긴장을 묻는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