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짜장면 경제학 / 수필 - 조동희
2024. 10. 14(월) 19:25 가+가-
얼마 전, 정부에서는 생활과 관련된 물가를 발표하였다. 무슨 품목은 어느 지역이 비싸고, 어느 품목은 어디가 싼가 하는 지역별 비교 방식이었다. 여러 가지 품목들 가운데서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짜장면’이었는데, 비싼 지역과 싼 지역의 가격 차이가 제법 났다.

내가 짜장면을 처음 먹어 본 때는 고향에 오일장이 생겨나고 오래지 않아서다. 초등학교엘 갓 들어간 무렵이어서 값이 얼마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머니가 사주신 그때의 짜장면 맛은 지금도 입안에 남아있는 듯하다. 그 후 나는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두어 번쯤 더 먹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짜장면을 한 끼 식사로 가끔 사 먹게 된 때는 1967, 8년경이었는데, 그 무렵의 짜장면 가격은 서울에서도 차이가 많아서 명동 지역은 그릇 당 35원, 종로 지역은 30원, 외곽으로 나가면 좀 더 저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같은 시기의 서울 시내 교통 요금은 전차 2원 50전, 시내버스는 학생 5원, 일반인 8원이었다. 지금의 짜장면 값과 시내버스 요금을 비교하면 짜장면도 시내버스도 얼른 헤아리기조차 힘들 만큼 올랐다.

그로부터 반백 년도 넘는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 기업들의 당시 자본 규모를 돌이켜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1960년대 후반의 조흥은행, 상업은행 같은 시중은행들 자본금이 8억 원씩이었고, 기업의 규모가 제법 크다고 할 수 있는 주식시장에 상장된 업체들도 자본금 1억 원 회사가 여럿이었다. 지금이야 서민들 살림집 한 채에도 수억 원짜리가 보통이요, 작은 가게 실내 장식 비용만으로도 1억 원을 훌쩍 넘겨 들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리곤 하니 그동안 돈의 가치가 얼마나 변했는가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돈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이른바 인플레이션 현상이다. 예금이나 대출 등의 금전 거래에 따라붙는 이자는 금전의 사용료가 되는 셈이지만, 사용 기간 동안의 가치하락에 따른 보상의 개념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그만큼 돈의 가치가 빨리 하락하고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에는 의미 깊은 가치 환산의 발표가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5만 환은 육십 년을 지나온 2011년 기준 오백만 원 가치라는 어떤 기관의 발표였다. 오일륙 군사정변 후의 화폐개혁(10환=1원)을 감안하면 육십 년 동안 천분의 일로 화폐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계산이다.

동족끼리의 전쟁 당시 우리는 너나없이 가난했었다. 외국의 도움으로 겨우 전쟁이 멎었고, 생활 또한 외국의 구호품으로 연명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형편은 변하여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할 만큼 잘살고 있다. 돈의 가치가 천분의 일로 떨어지는 동안 국민소득은 천배쯤 올라 물질은 풍성해졌고, 나라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요, 여러 나라에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있으며, 세계 도처의 관광지를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사람들이 누비고 있다. 짧은 시일에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룬 결과다.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빠른 발전상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는 사이에 우리는 잃은 게 있다. 마음의 풍요로움이다. 경제의 발전에서 얻어진 물질의 풍요 속에서 배 곯던 시절의 인정과 사랑을 찾을 수가 없다. 효를 근본으로 하던 가족제도는 파괴되었고, 가난 속에서도 남을 배려하던 마음은 찾아보기 힘들며,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하는가는 알려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본위로만 치닫고 있다. 거기에다 인명 경시의 풍조까지 나타나고 있으니 인간 가치가 끝 모르게 하락되고 있다 하겠다.

행복지수는 가난한 나라일수록 높다고 한다. 우리는 짜장면 한 그릇에 행복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짜장면 한 그릇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풍요의 저쪽과 이쪽의 차이이다. 풍요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는 관계일까?

세상은 변한다. 이 나라의 금융계를 이끌어왔던 상업·제일·조흥·한일·서울 등 시중은행은 상호마저 가뭇없이 사라지고, 사투리였던 짜장면이 표준어로 지정되듯 앞으로도 사회는 변할 것이다. 경제의 규모 또한 날이 갈수록 커질 테고, 거기에 반비례하여 돈의 가치는 떨어지며, 짜장면 값은 앞으로도 오를 것이다. 하지만, 짜장면의 값이 얼마가 되어도 한 그릇의 짜장면은 한 끼니의 식사에 불과할 터.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인정과 사랑이 가득한 사회가 다시 오기를, 그래서 짜장면 한 그릇에서도 행복을 느끼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동희 약력>
▲‘월간 예향’ 현상공모 당선, ‘문학춘추’ 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무등문학회 동인, 무등문학회 회장 역임
▲수필집 : ‘어머니의 유산’, ‘여정’, ‘길고도 짧았던 몸부림’ 외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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