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탐방을 마치고 내린천을 따라 곰배령으로 향한다. 내린천은 첩첩산골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간다. 워낙 깊은 산골이라 마을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첩첩한 산골 하천을 따라 한참 달리다가 만난 마을과 강변의 좁은 농경지가 반가울 정도다. 현리에서 내린천 본류와 헤어져 방태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세 져버릴 만큼 첩첩산중인 아침가리 앞을 지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 중 오지인 진동리는 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다.

겨울철에는 설피 없이 못산다는 진동리 설피마을에서 숙박을 하고서 곰배령 탐방을 나선다. 곰배령 탐방은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몇 주 전에 인터넷을 통해 예약을 해뒀다.

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를 지나자마자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아름드리 활엽수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숲길 옆으로는 청아한 소리를 내며 계곡물이 흘러간다. 여름철트레킹 코스로는 계곡 숲길만큼 좋은 곳이 없다. 완만한 흙길은 두세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기에도 그지없이 좋다. 곰배령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완만하여 부담없이 오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계류는 바위를 넘어 작은 폭포를 만들기도 하고, 고요하게 흐르기도 한다. 티없이 맑은 물은 계곡을 덮고 있는 나무들과 속삭이며 사랑을 나눈다.

계류는 바위를 넘어 작은 폭포를 만들기도 하고, 고요하게 흐르기도 한다. 티없이 맑은 물은 계곡을 덮고 있는 나무들과 속삭이며 사랑을 나눈다. 계곡은 숲이 있어 외롭지 않고, 숲은 계곡이 있어 활력 넘친다. 계곡과 숲은 아름답게 조화를 이뤘다.

점봉산은 한반도 자생식물의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이 맞닿는 지역으로 한반도 자생종의 약 20%에 해당하는 85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숲이 서서히 변화해 가는 천이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극상림을 이루고 있어 한반도의 대표적인 원시림을 볼 수 있다. 극동아시아 냉온대 기후대에서 이룰 수 있는 평형상태의 산림생태계를 연구할 수 있는 한반도의 대표적 원시림이다.

산림청에서는 점봉산의 뛰어난 산림생물다양성을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1987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산림보호구역 일부지역만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1993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계곡 숲길을 따라 2.2㎞를 올라가니 산속 깊은 곳에 별천지처럼 작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강선마을이다. 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가 있는 설피마을만 해도 오지인데, 그곳에서 산길로 40분 가까이 걸어와 사람이 사는 마을을 만났으니 ‘신선이 내려온 마을(降仙)’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강선(降仙)마을은 10가구 남짓하지만 한때는 화전민들이 몰려들어 북적이던 곳이었다.

강선마을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사람 한 명 걸을 수 있는 숲길이지만 경사는 급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숲은 원시림으로 울창하다 못해 숭엄하다. 신갈나무와 단풍나무,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서어나무 등 수종도 다양하다. 아름드리나무 아래에는 고사리나 고비 같은 양치식물들이 자라고, 바위나 고사목에는 푸른 이끼가 끼어 원시적인 느낌을 고조시킨다.

하늘을 가린 숲길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원시림은 사람이 일부러 심지 않아도 스스로 싹이 트고, 성장하여 아름드리나무가 됐다. 자연은 사람들이 훼손하지 않으면 스스로 숲이 돼 만물을 이롭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점봉산 곰배령을 찾는 것은 야생화 때문이지만, 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원시림으로 인정받고 있는 산림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원시림 속에서는 현대문명으로부터 벗어난 태초의 원초성이 느껴진다. 원초성은 한없이 포근할 뿐더러 모두를 포용한다.

곰배령은 다양한 식물과 야생화가 서식하고 있어 ‘천상의 화원’이라 부른다. 넓은 초지에는 계절별로 수많은 야생화들이 피고 진다.

곰배령(1,164m)에 도착하자 하늘이 열리면서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곰배령은 곰이 하늘로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 해 지어진 이름이다. 곰배령은 오래전에 양양에서 봇짐장수들이 당나귀에 소금을 싣고 넘었고, 약초꾼들과 심마니들도 넘나들던 곳이다.

곰배령은 다양한 식물과 야생화가 서식하고 있어 ‘천상의 화원’이라 부른다. 넓은 초지에는 계절별로 수많은 야생화들이 피고 진다. 오늘은 말나리, 기린초, 동자꽃, 이질풀, 어수리, 좁쌀풀, 참취꽃, 꿩의 다리, 노루오줌, 마타리 같은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있다. 야생화와 천천히 눈을 맞추고 있으니 내가 꽃이 된 것 같다.

넓은 곰배령 뒤에서는 작은점봉산(1,295m)이 감싸고 있다. 작은점봉산과 곰배령은 고도차가 131m밖에 나지 않아 이웃처럼 편하게 느껴진다. 곰배령 탐방로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하산전용 코스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작은점봉산과 마주보고 있는 남쪽 봉우리로 올라가니 곰배령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에서는 곰배령이 내려다보이고, 작은점봉산과 점봉산(1,424m)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설악산 대청봉도 조망되는데 오늘은 구름이 끼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산로는 전망대를 출발하여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어진다.

숲은 주로 울창한 활엽수로 이뤄져 있지만 주목군락지도 있다. 수백 년 수령의 주목나무들이 아름드리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활엽수 속에 붉은 줄기를 한 주목나무가 거목으로 서 있으니 군계일학처럼 보인다.

숲은 주로 울창한 활엽수로 이뤄져 있지만 주목군락지도 있다.

수백 년 수령의 주목나무들이 아름드리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버틴다는 주목나무는 우리나라 고산지대에서만 자생하는 나무다. 활엽수 속에 붉은 줄기를 한 주목나무가 거목으로 서 있으니 군계일학처럼 보인다.

숲에는 곧게 자란 나무가 있는가 하면 굽은 나무도 있다. 모진 눈보라와 거센 비바람을 견디느라 휘고 옹이 져도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각기 다른 모양을 한 나무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신갈나무, 피나무 같은 활엽수가 이룬 숲은 녹색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 울창한 숲이 포근할뿐더러 나무 아래 깔려있는 초원이 그렇게 산뜻할 수 없다. 숲에는 수명을 다해 쓰러져 있는 고사목도 있고, 왕성하게 자란 아름드리나무도 있으며, 어린 나무들도 있다. 태어나서 죽어가는 생로병사의 과정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숲에는 곧게 자란 나무가 있는가 하면 굽은 나무도 있다. 모진 눈보라와 거센 비바람을 견디느라 휘고 옹이 져도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각기 다른 모양을 한 나무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를 1㎞ 정도 앞두고 계곡을 만난다. 계곡 건너로 강선마을 곰배령 가는 길이 바라보인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계곡물이 시원하다.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며 흐르는 계류가 길을 걷느라 열이 오른 몸을 식혀준다. 줄기가 굽어 아치를 이룬 나무가 나무문을 만들어준다.

나무다리를 건너자 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가 기다리고 있다. 연보랏빛 노루오줌이 손을 흔들어준다.

말나리

이질풀

참취꽃

어수리

좁쌀풀

노루오줌

동자꽃

까치수염

-----------------------------------------------------
※여행쪽지
▶점봉산에서는 한반도 자생종의 약 20%에 해당하는 85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아울러 한반도의 대표적인 원시림을 볼 수 있는 숲을 이루고 있다. 곰배령은 다양한 식물과 야생화가 서식하고 있어 ‘천상의 화원’이라 부른다.
※코스 : 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강선마을→곰배령→전망대→주목군락지→철쭉군락지→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
※거리, 소요시간 : 10.5㎞, 4시간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점봉산산림생태관리센터(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곰배령길 15)
<장갑수·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