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조성된 마을에 스물 다섯 가구가 모인지 10년째다. 의견을 교환하고 전원생활의 꿈을 꾸며 각자의 집을 짓고 가꿔왔다. 돌집, 조립주택, 목조주택, 한옥, 황토집, ALC콘크리트집 등 다양한 집들이 지어졌다. 사람들이 구경 오는 마을이 됐다. 집들이 잔치도 했다. 마을 분들이 모여서 난타도 함께 배우고 노래자랑도 하고 새해 해돋이도 함께 했다.

시작은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사람들이 모인 까닭에 당연히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양보와 배려로 해결해 나가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각자가 사는 집을 자랑하며 꿈을 이야기 했다. 멋있는 집은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한동안 지인들의 방문이 이어져 모두가 바쁜 날을 보냈다. 맛있는 음식 향기와 웃음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점차 찾아오는 이들이 뜸해지고 서서히 조용한 마을이 되어간다.

대부분 직장을 퇴직한 부부다. 모두가 아파트 생활을 경험 했기에 아파트의 단절된 문화를 느껴서 공기 좋은 곳에 들어와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동안 폐쇄된 문화 속에서 생활했기에 모든 게 쉽게 오픈되지는 않았다. 담장이 없는 환경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서인지 갈등의 벽이 생기기도 한다. 이해와 배려로 서로 좋은 이웃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 옆집에 누가 사는가에 따라 집값이 다르다는 흘러가는 이야기가 마음에 다가온다. 담장이 없어서 쉽게 보이는 이웃과 밝은 웃음을 나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즐거움은 또 어떠한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힘을 보탠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을에 분리수거장이 있다. 모두가 사용하기에 깨끗했으면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가끔은 어질러져 있다. 간간이 마을 분이 청소하는 것을 본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돌아서서 어지럽히는 사람을 탓하기 전에 고운 마음으로 쓰레기 줍는 행동이 참 보기 좋다. 일 년에 두 번 마을에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서 울력을 한다. 각자의 사정이 있기에 모두가 함께 하지는 못한다. 어떤 집에서는 음료도 제공해주기도 한다.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이기에 참여하지 않은 이웃을 탓하기 전에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참여를 즐기고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래 전에 제주도 토박이 지인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다른 집의 귤나무에서 귤을 몇 개 따주면서 이 정도는 서로 이해한다고 하여 부러워했었다.

좋은 집은 어떤 집일까? 비싼 돈을 들여서 지어진 크고 멋있는 집일까?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집은 사람을 닮아서 만들어진다. 집이 곧 그 사람이다. 옆집에 좋은 이웃들이 사는 집이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집이 아니다. 사람의 웃음 소리가 들리고 맛있는 음식 향기가 나는 집이다. 사람의 향기가 가득한 집이다. 요즘에는 애들이 장난치며 웃음소리가 들리면 덩달아 더 즐거워진다. 살아있는 집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집이다. 유안진님의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형제나 제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는 싯구처럼 좋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집이 제일 좋은 집이다.

마을에 들어오기 전엔 조금 깊은 곳에 혼자서 사는 집을 꿈꿨다. 우연히 기회가 돼 이 마을로 들어왔다. 참 잘한 것 같다. 멀리 떨어져 혼자 사는 집은 갈등도 없이 여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함께 하는 즐거움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그런 즐거움이 있기에 다가오는 갈등 마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불현 듯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집앞 태극기 게양대에 ‘어서오세요’라는 작은 깃발을 세워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좋은 집은 이웃과 함께 하는 살아있는 집이다. 오늘은 어떤 좋은 사람이 찾아올지 궁금해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