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햇빛이 심상치 않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처럼 내리쬐는 강한 햇볕은 곧 여름이 올 것만 같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외국의 이상 고온 현상과 폭우 등은 이제 일상이 돼가고 있다. 동네 호숫가 주변에 빨간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집 앞 골목에 덩굴장미 그 옆에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화사한 수국도 어깨춤을 추는 듯하다. 5월 어린이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야외활동을 못 한 아이들은 울상이 된 반면 8일 어버이날은 화사한 햇빛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처진 어깨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주는 것 같다.

이제는 빛이 바래버린 스승의 날 카네이션은 감사보다는 슬픈 현실 속 교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지방 인구감소로 인한 학생 수 급감으로 인해 한창 뛰어놀아야 할 운동장은 여기저기 풀이 자라고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는 멀어져가는 뱃고동 소리 같다. 조만간 제43주년 5·18 민주화운동 추모의 날이 돌아오지만, 그날의 함성소리 보다는 갈라지고 나눠진 이념과 사상의 굴곡진 모습만 되풀이 되어지는 현상은 안타깝기만 하다. 5월은 여러 행사와 축제, 기념일로 가득해서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념일 등을 보내는 구조도 영상 위주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축하 영상 또는 SNS를 통해 문자로 대신하는 기념방식이 일상화되고 있다. 알파 세대(디지털 원주민)가 접하는 5월은 어떨까? MZ세대 다음으로 등장한 알파 세대는 디지털 온리(Digital Only) 세대로 스크린 기기에 익숙하다. 이미지와 영상을 소통의 기본 수단으로 사용한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가 느끼는 5월의 감성을 알파 세대는 이미지와 영상으로 이해를 한다. 어린이날 선물은 스크린으로 받기를 원한다. 어버이날은 왜 있는 거지? 쳇GPT에게 물어본다. 스승의 날에 선물은 잊은 지 오래다. 태어나 보니 스승의 날 선물은 안 하고 있었으니 잘 모를 일이다.

얼마 전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을 집으로 모셔 식사를 대접했다. 비록 이제 계단 하나하나 올라오기 힘드셨고, 옛날에 잘 드시던 술 한 잔도 마시기 어려운 건강을 가지고 계시는 몸이셨지만 모처럼 만의 자리에 어르신들은 한잔 술에 얼굴이 발그레해지셨고 젊은 시절 이야기로 모처럼 흥이 나셨다. 그 자리에 함께한 알파 세대인 막내아들은 이내 자기 먹고 싶은 거만 집어먹고 스마트폰에 정신을 판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보다는 쇼츠(shorts)를 보는 것이 더 재미가 있단다. 그렇다고 야단을 칠 수도 없다. 그 아이들은 태어나 보니 이미 디지털 세상이었기 때문에 아날로그 감성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가르치려 들다간 바로 대화 단절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들의 눈은 디지털 스크린에 꽂혀 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냈고 부모님의 말 없는 사랑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의 모습에 어색하기만 한 우리 알파 세대들이 어른이 되면 이 지구에는 사이보그 인간들이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을 것인데 그들은 어린 시절 스마트폰이 그리울 것이다. 가상현실과 현실세계를 혼동하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면서 스크린에서 제사를 지낼 것이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스크린에 추모의 글과 축하의 글들을 올리고 온라인으로 축의금과 부의금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디지털 알파 세대에게 가정의 달 5월이 플랫폼 업계에서 쏟아내는 선물잔치에 온라인 뱅크의 돈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놓는 간단한 손가락 노동을 반복하는 단순한 일이 아니길 바라본다. 지금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뜨거운 외침과 눈물로 평화와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었고,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동네 어른들이 함께했고, 연기 나는 공장의 노동과 함께 연필 부러지게 공부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이름 모를 노동자들의 땀이 있었다. 오늘의 웃음이 어제 누군가의 피눈물로 인해 얻은 것임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성(Humanity)’을 지닌 인간(人間)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