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돈은 곧 굶어 죽어도 안 받아요! 95년 동안 살면서 이렇게 억울한 적은 처음입니다!” 일본 전범기업과 평생을 싸워온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민족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양금덕 할머니는 대통령을 질타했다.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 윤석열 정부는 일본 정부에 머리를 조아리며 일본 우익의 논리로 삼일절 기념사를 하고, 심지어 우리 기업이 돈을 모아서 강제동원 피해자를 보상해 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세종시의 한 아파트 주민은 삼일절에 일장기를 걸고 일본 우익에 동조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께 묵념하는 삼일절에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2023년, 역사의식은 퇴행했다. 그동안 일본 우익은 미개한 나라를 근대화시킨 것으로 침략전쟁을 미화시켰으며, 태평양 전쟁 후, 교과서 역사 왜곡은 물론, 영화까지 만들어 핵 투하 후 참혹한 일본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마치 일본이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과거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 없는 가해자에게 피해자인 우리 정부가 화해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한다. 보상도 우리 기업에서 돈을 모아서 해결하고 동맹의 이름으로 미래를 열자고 한다. 일본 군국주의 마중물 역할을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일본 총리가 그런 발언을 해도 발끈할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대통령을 우리 대통령이라 하겠는가? 우리 국민의 존엄을 짓밟는 발언이다. 화해란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에서 첫 길이 열리는 것이다.

가해자들을 피해자로 둔갑시켜주는 일은 광주에서도 벌어졌다.

5·18부상자회와 5·18공로자회 두 단체가 1980년 5월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진압군 특전사동지회에게 ‘용서’와 ‘화해’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고 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천불 난다!”라는 광주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직도 광주시민들을 폭도와 북한군이라고 하며 5·18을 왜곡하고, 진상규명도 진정한 사과도 없는 상황에서 용서와 화해라니!

시민들이 나서서 행사를 막으려 하자, 2월19일, 대국민선언식과 5·18국립묘지 참배를 기습적으로 강행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5·18 두 개 단체는 5·18민주화운동의 치유와 화해 그리고 진상규명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포용과 화해와 감사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식’, 이 그럴싸한 제목의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공동선언문’의 내용은 군인도 피해자라고 적시되어 있다.

“당시 계엄군의 활동을 광주시민의 정의로운 항거를 억압한 ‘가해자’로 볼 것이 아니라, … ‘피해자’로 보는 것이 마땅…”

그 당시 광주시민을 학살한 것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계엄군으로 공적 직무를 수행했으며, 질서유지를 한 정당한 군인의 행위였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광주시민들을 북한군이나 폭도로 보는 관점이다. 군인들이 피해자라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자들이 진정한 사과도 없이 어찌 이런 망언을 할 수 있는가! 아직도 수 백명의 실종자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진상은 규명되지 않고 군인들은 증언하지 않고 있는데, 광주 5·18로 권력과 돈을 얻으려는 세력들은 쉽게 화해와 포용을 말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역사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침략자 일제가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인도 전쟁 피해자라고 하는 것과 광주시민을 학살한 계엄군이 명령에 따랐을 뿐 피해자라고 하는 관점은 가해자가 진실을 왜곡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것이 치유와 화해라니, 역사 왜곡이요,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나는 보았다. 1980년 5월 광주시민은 질서 정연했고 북한군도 폭도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