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보성 해평호수 십리길
고요한 호수엔 오봉산이 그림자를 내려놓고
2022. 10. 04(화) 19:22 가+가-

대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나 있는 길은 물 흐르듯 유연하다. 가벼운 바람에 대나무 부딪치는 소리가 가야금 연주 같다.

들판이 황금색으로 출렁인다. 보성군 득량면소재지를 지나자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드넓게 펼쳐지는 예당평야는 득량만을 막아 만든 간척지다. 예당평야 남서쪽에 다섯 봉우리로 이뤄진 오봉산이 솟아있다. 오봉산 자락에 인공호수가 있는데, 그 이름이 해평호다. 호숫가 오솔길을 따라 남녀노소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해평호수 십리길’을 찾았다.

‘해평호수 십리길’은 칼바위주차장에서 조그마한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길은 호숫가 완만한 숲길을 따라 이어진다. 산자락에는 소나무, 참나무, 산벚나무, 단풍나무, 삼나무, 편백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사이좋게 숲을 이뤘다. 길가에는 돌탑들도 서 있고, 숲 사이로는 푸른 호수가 출렁인다. 오봉산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물은 청정한 호수를 만들었다.

길을 걷다보면 다양한 모양으로 쌓아놓은 돌탑들이 눈길을 끈다.


첫 번째 조망대에서 오봉산을 대표하는 자연경관인 칼바위를 바라본다. 칼끝처럼 날렵하게 솟은 칼바위는 안쪽으로 홈이 파여 그 모습이 신비하다. 신라시대 고승 원효대사는 용추폭포에서 몸을 씻고 칼바위에 올라 수도터로 삼아 불도를 닦았다고 한다.

숲을 이룬 나무들과 눈을 맞추면서 천천히 걷는다.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고개를 쳐들면 나뭇가지들이 가볍게 흔들면서 말을 걸어온다. 나와 나무 사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교감이 이뤄진다. 언어가 소통수단이 되고,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기능을 하지만 언어가 가진 한계 또한 명백하다. 모든 감정과 느낌을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나 새와 다를 바 없는 자연의 일원이 된다. 자연의 일원이 되니 인위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길은 대나무숲으로 이어진다. 곧게 솟은 대나무 숲은 싱그럽고 강직한 멋을 제공해준다. 예로부터 사군자로 일컬어지는 대나무는 사철 푸르고 곧게 솟아 흐트러짐이 없다. 대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나 있는 길은 물 흐르듯 유연하다. 가벼운 바람에 대나무 부딪치는 소리가 가야금 연주 같다.

대숲을 빠져나와 비니거파크라는 이름의 관광농원을 만난다. 농장의 넓은 대지위에는 1천900여개의 항아리들이 열병을 하듯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이 항아리에서는 흑초라 이름붙인 식초가 숙성되고 있다. 비니거파크를 지나면서부터는 자동차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 아래로는 해평호수가 잔잔하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구불구불 이어지는 흙길과 함께 한다.

농장의 넓은 대지위에는 1천900여개의 항아리들이 열병을 하듯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걷기 좋은 비포장 도로 아래로는 해평호수가 잔잔하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구불구불 이어지는 흙길과 함께 한다.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호수는 햇살에 비춰 은빛으로 반짝인다. 오봉산 봉우리들이 푸른 호수와 함께 예쁜 풍경화가 된다. 댐 근처에 도착하자 커다란 소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준 조망쉼터가 기다리고 있다. 검암봉이라 불리는 칼바위를 비롯하여 오봉산을 이룬 산봉우리들이 호수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길이 2백 미터에 이르는 제방을 따라 호수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오봉산 봉우리들이 흰 구름과 함께 푸르고 잔잔한 해평호수에 그림자를 내려놓았다. 높지 않게 솟은 봉우리들과 아담한 크기의 인공호수가 만들어내는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푸근해진다. 주변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고독한 자유’를 즐긴다.

오봉산 봉우리들이 흰 구름과 함께 푸르고 잔잔한 해평호수에 그림자를 내려놓았다. 높지 않게 솟은 봉우리들과 아담한 크기의 인공호수가 만들어내는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푸근해진다.


제방을 건너 칼바위주차장으로 통하는 도로를 만난다. 해평호수 십리길은 간간이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 아래 수변 오솔길을 따라 이어진다. 오솔길은 데크길로 시작했다가 흙길로 바뀐다. 호수에 바짝 붙은 숲길 아래로 호수물이 출렁인다. 물에 잠기면서 고사목이 된 나무들이 앙상한 줄기와 가지를 그대로 간직한 채 서 있다.

다양한 모양으로 쌓아놓은 돌탑들이 눈길을 끈다. 하나하나 하찮아 보이는 돌멩이를 모아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돌탑은 단순한 상징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돌탑에는 개인과 마을의 안녕을 빌거나 삶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고자하는 신앙적인 의미가 스며있다.

돌탑지대를 지나 걷기 좋은 오솔길을 따라 가니 칼바위주차장이다. 어느새 해평호수를 한 바퀴 돌아 출발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칼바위주차장에서 용추폭포와 칼바위를 거쳐 이곳으로 내려오는 등산코스는 2시간 정도 소요되어 해평호수 십리길과 연계하여 걸을 수 있지만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대신 해평호수에서 5㎞ 거리에 있는 강골마을에 들르기로 했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판을 지나 강골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은 낮은 야산이 감싸고 있고, 남향을 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드넓은 예당평야가 펼쳐지고 들판 서쪽에 오봉산이 솟아 있다. 강골마을에는 전통가옥 3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뒤쪽 높은 곳에 자리한 열화정이라 불리는 정자를 찾아간다.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왕대밭이 정겨운 길을 지나니 열화정 돌담이 맞이한다. 열화정은 조선 헌종 11년(1845) 이진만이 후진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로 1984년 1월1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됐다. 열화정(悅話亭)은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에서 ‘친척과 정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라는 글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화정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ㄱ’자형 누마루집이다. 자연석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건축물을 앉혀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고, 건물 앞에는 마당과 돌담이 둘러져 있다. ‘ㄱ’자형 건물평면과 반대 모양의 ‘ㄴ’자형 연못이 열화정 앞쪽에서 옆으로 비켜서 배치되어 있다.

열화정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ㄱ’자형 누마루집이다. 자연석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건축물을 앉혀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고, 건물 앞에는 마당과 돌담이 둘러져 있다.


앞으로 돌출한 누마루에서 바라보니 ‘ㄴ’자형 연못과 기와를 얹은 돌담, 일보문이라는 편액이 붙은 대문 등이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팽나무·느티나무·대나무 같은 나무들이 열화정 공간을 감싸고 있어 한없이 포근하다. 나무 사이로 예당평야가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은 들판으로 바뀌었지만 간척되기 전에는 열화정에 앉아 있으면 득량만과 오봉산이 보였다고 한다.

앞으로 돌출한 열화정 누마루에서 바라보니 ‘ㄴ’자형 연못과 기와를 얹은 돌담, 일보문이라는 편액이 붙은 대문 등이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열화정은 각종 드라마의 촬영지로 인기가 많다. ‘붉은 단심’을 비롯해 ‘옷소매 붉은 끝동’, ‘신입사관 구해령’ 촬영지로 선택돼 많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열화정이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강골마을로 내려오니 마을 중앙에 연못이 있고, 연못 뒤편으로 고풍스러운 돌담과 고택들이 바라보인다. 이 마을은 많은 의병과 항일투사를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일까? 마을 돌담길과 고택들을 둘러보고 있으니 그 속에서 꿋꿋한 선비정신이 느껴진다. 강골마을을 뒤로 하고 득량역으로 향한다.

강골마을에는 마을 중앙에 연못이 있고, 연못 뒤편으로 고풍스러운 돌담과 고택들이 바라보인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보성 해평호수 십리길은 칼바위로 유명한 오봉산 자락에 자리한 해평저수지 수변을 따라 걷는 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코스 : 칼바위주차장→비니거파크→해평저수지 제방→칼바위주차장
※거리, 소요시간 : 4㎞, 1시간 20분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오봉산 칼바위주차장(전남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 산 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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