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19)
관동이 내게 와서 글자의 진의를 물어오기에
2021. 07. 06(화) 19:35 가+가-
卽事(즉사) / 야은 길재

손 씻는 맑은 샘물 냉랭하고 차갑고
내 몸에 임한 나무 무성하게 높다란데
관동이 글을 물으니 즐길 만 하더이다.
盥手淸泉冷 臨身茂樹高
관수청천랭 임신무수고
冠童來問字 聊可與逍遙
관동래문자 요가여소요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시상을 떠올리는 수가 있었지만, 어떤 사물을 보면서 즉석에서 시상을 떠올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른바 자연이 주는 사물을 보고 떠오르는 시상이란 선물이다. 곧 자연이 시인에게 주는 선물이다. 시를 일구어 낼 수 있는 즉사(卽事)다. 자연을 보거나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곧장 이루어 낸 시상이 즉사이리라. ‘손을 씻는 맑은 샘물은 차기만 하고, 내 몸에 임한 무성한 나무는 높고 크기만 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관동이 내게 와서 글자의 진의를 물어보기에’(卽事)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로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다. 1387년에 성균학정이 됐다가, 1388년에 순유박사를 거쳐 성균박사로 승진했다. 공직에 있을 때에는 태학의 생도들이, 집에서는 양반 자제들이 그에게 배우기를 청했다 한다. 저서로는 ‘야은집’(冶隱集)이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손을 씻는 맑은 샘물은 차기만 하고 / 내 몸에 임한 무성한 나무는 높고 크기만 하네 // 관동이 내게 와서 글자의 진의를 물어오기에 / 귀 기울려 가히 더불어 소요할 만하다 했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즉석에서 시 한 수]로 번역된다. 사전적인 어휘의 의미는 ‘그 자리에 가서 직접 일에 관계함’으로 직역되겠다. 시인은 공직에 있을 때는 태학의 생도들에게 학문을 전수했고, 퇴임해서 문밖에 성시(成市)를 이루는 학동들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대에 알려진 큰 스승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인은 선경의 시상 치고는 아주 단순한 상황적인 배경에서 시심의 한 줌을 얻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손을 씻는 맑은 샘물은 그지없이 차갑기만 하고, 내 몸에 임한 무성한 나무는 높고 크기만 하다고 했다. 이어지는 후정(後情)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질문과 같은 응대에 평자는 평설은 어정쩡해지지 않을 수 없다.

화자의 속내가 들여다보인 한 마디 시상주머니는 평범 속의 비범이나 되는 것처럼 차분해진다. 관동(冠童)이 와서 글자의 진의를 물어 오기에, 귀 기울려 가히 더불어 소요할 만하다 했다고 했다. 관동은 남자 어른과 남자아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글을 배우려 남자를 통칭한다. 많은 시를 보았지만 글자와 소요할 만 하다는 표현은 시상이 적어 대칭적인 표현이 없다.

※한자와 어구

手: 손을 씻다. 淸泉: 맑은 물. 冷: 차갑다. 臨身: 몸에 임하다. 茂樹: 무성한 나무. 高: 높다. // 冠童: 남자들의 통칭. 來問: (구름과 같이) 몰려와서 묻다. 字: 글자. 혹은 문장. 聊: 귀 기울이다. 의지하다. 可與: 가히 더불어서. 逍遙: 한가롭게 산책한다는 뜻인데, 여기선 ‘그저 지내다’는 뜻 정도겠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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