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을 찾아서 / 최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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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18(목) 18:30 가+가-
최래오 들꽃작은도서관장
한 해가 저문다. 연말이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새로움’. 올해는 바깥에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새로움이 시작되었다. 같은 하늘, 같은 들판을 보아도 그걸 대하는 내 몸이 다르다. 새로움은 밖에서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방식에서 피어난다.
자연 속에서 지내면 나를 더 또렷하게 느낀다. 무한할 것 같던 체력도 정점이 있음을, 몸이 먼저 알려준다. 사다리를 오르다 미세하게 흔들리기만 해도 마음이 철렁하고, 지난해까지 500㎏ 오토바이를 몰던 날들이 언제였나 싶다. 삶의 터닝포인트가 소리 없이 시작됐다. 오르막만 보이던 길에 이제 내리막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서글픔보다 담담함이 앞선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왔으니 큰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이제 어떻게 내려갈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내려가는 지혜’다. 내려가는 길에는 다른 규칙이 있다. 힘으로 버티기보다, 위험을 미리 알아차리고, 남길 것과 놓을 것을 구분하는 감각. 무거운 것을 혼자 들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용기,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할 줄 아는 절제도 그 지혜에 포함된다.
새로움은 취향에서도 찾아왔다. 더는 살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턴테이블을 들였다. 물건을 들이는 일이 아니라, 새로움을 들이는 일 같았다. 음악은 내가 영원히 다 못 이룰 즐거움이다. 젊을 땐 노력만큼 늘지 않는 실력이 스트레스였지만, 이제는 다르다. 끝없이 공부할 음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좋다. 차실에 세워둔 기타 줄을 지나가다 톡 튕기는 일도 놀이가 된다. 집 안의 드럼은 연주가 아니라 감정을 풀어내는 가구다. 못 부르는 노래도 이제는 나만의 감정으로 즐길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마음이 빠지니, 남는 것은 순수한 재미뿐이다.
클래식 중심이던 음악 감상은 턴테이블로 듣는 재즈로 천천히 이동 중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So What’을 들으며 트럼펫과 베이스, 피아노, 색소폰의 소리를 잡아내고, 주고받는 대화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누가 주인공인지 정해져 있지 않은 음악.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이 이어받는 자유로움이 좋다,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파도와 달리, 작은 말들이 이어지며 만드는 여유가 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의 기둥은 독서와 음악이다. 책장 앞에 서서 표지만 보아도 생각이 움직인다. 독서는 생각을 유연하게 한다. 책은 나를 다른 나라와 다른 시대로 데려가 또 다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서점에 들러 우연히 몇 년 전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4,5권을 만나서 구입했다. 마음이 들뜬다. 새로움은 ‘처음’이 아니라 ‘다시’에서 오기도 한다.
새로움은 여행과 만남에서도 자란다. 같은 풍경과 반복된 생활이 이어질 때 낯선 길을 찾아 나선다. 남해 여행에서의 해돋이, 제주 여행길에서 만난 북카페의 소박함과 다양함이 오래도록 남았다. 며칠 전 고창에서는 노동저수지의 달빛수상길을 걸으며 작은 마을의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걸음 끝에 만난 ‘황윤석 도서관’의 시설과 규모에도 놀랐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는 공간이 나를 만든다’는 문장을 만났다. 그렇다면 내 집의 취향과 아름다움은 어떤 것일까? 나는 내 공간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새로움은 바깥 풍경만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보게 하는 질문에서 자란다. 집을 손보는 일이 곧 삶을 손보는 일로 이어진다.
시선도 바뀌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 선글라스를 샀다. 나는 옷으로 생활을 구분하듯, 선글라스로 여행의 자유를 구분해 보려 한다. 바람을 안고 달리는 오토바이의 자유와, 자유롭고 싶은 선글라스가 같은 마음으로 느껴진다.
내 수첩에는 가야 할 곳과 만나야 할 사람이 적혀 있다. 나는 한 주에 한 사람, 목적 없는 만남을 가진다. 그 만남 자체가 새로움이 된다. 새해에는 일기처럼 쌓인 삶의 일상을 묶어 책으로 내고 싶다.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찾은 즐거움, 내려가는 길에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 방법을 적어 보고 싶다. 남은 날들을 자연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사랑, 쉬지 않고 나아가는 공부, 설렘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나를 가꾸어 가고 싶다.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루틴과 오늘의 선택 옆에 붙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새로움을 찾는다고 늘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제와 다른 질문 하나, 이어지는 만남, 책 한 권, LP판 위에 올리는 떨리는 손, 그리고 창밖의 바람 소리. 그렇게 작은 새로움을 주워 담으며, 나는 조금씩 천천히 새해로 들어선다. 올라가는 꿈이 있었다면, 이제는 지키는 꿈이 있다. 오늘의 나를 오래 데리고 가는 꿈. 그 꿈을 위해 나는 내 몸의 말을 듣고, 음악을 틀고, 책장을 넘기며, 집을 나서며 조용히 새로움을 연습한다, 그리고 기쁘게.
자연 속에서 지내면 나를 더 또렷하게 느낀다. 무한할 것 같던 체력도 정점이 있음을, 몸이 먼저 알려준다. 사다리를 오르다 미세하게 흔들리기만 해도 마음이 철렁하고, 지난해까지 500㎏ 오토바이를 몰던 날들이 언제였나 싶다. 삶의 터닝포인트가 소리 없이 시작됐다. 오르막만 보이던 길에 이제 내리막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서글픔보다 담담함이 앞선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왔으니 큰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이제 어떻게 내려갈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내려가는 지혜’다. 내려가는 길에는 다른 규칙이 있다. 힘으로 버티기보다, 위험을 미리 알아차리고, 남길 것과 놓을 것을 구분하는 감각. 무거운 것을 혼자 들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용기,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할 줄 아는 절제도 그 지혜에 포함된다.
클래식 중심이던 음악 감상은 턴테이블로 듣는 재즈로 천천히 이동 중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So What’을 들으며 트럼펫과 베이스, 피아노, 색소폰의 소리를 잡아내고, 주고받는 대화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누가 주인공인지 정해져 있지 않은 음악.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이 이어받는 자유로움이 좋다,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파도와 달리, 작은 말들이 이어지며 만드는 여유가 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의 기둥은 독서와 음악이다. 책장 앞에 서서 표지만 보아도 생각이 움직인다. 독서는 생각을 유연하게 한다. 책은 나를 다른 나라와 다른 시대로 데려가 또 다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서점에 들러 우연히 몇 년 전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4,5권을 만나서 구입했다. 마음이 들뜬다. 새로움은 ‘처음’이 아니라 ‘다시’에서 오기도 한다.
새로움은 여행과 만남에서도 자란다. 같은 풍경과 반복된 생활이 이어질 때 낯선 길을 찾아 나선다. 남해 여행에서의 해돋이, 제주 여행길에서 만난 북카페의 소박함과 다양함이 오래도록 남았다. 며칠 전 고창에서는 노동저수지의 달빛수상길을 걸으며 작은 마을의 아름다움에 감탄했고, 걸음 끝에 만난 ‘황윤석 도서관’의 시설과 규모에도 놀랐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사는 공간이 나를 만든다’는 문장을 만났다. 그렇다면 내 집의 취향과 아름다움은 어떤 것일까? 나는 내 공간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까? 새로움은 바깥 풍경만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보게 하는 질문에서 자란다. 집을 손보는 일이 곧 삶을 손보는 일로 이어진다.
시선도 바뀌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 선글라스를 샀다. 나는 옷으로 생활을 구분하듯, 선글라스로 여행의 자유를 구분해 보려 한다. 바람을 안고 달리는 오토바이의 자유와, 자유롭고 싶은 선글라스가 같은 마음으로 느껴진다.
내 수첩에는 가야 할 곳과 만나야 할 사람이 적혀 있다. 나는 한 주에 한 사람, 목적 없는 만남을 가진다. 그 만남 자체가 새로움이 된다. 새해에는 일기처럼 쌓인 삶의 일상을 묶어 책으로 내고 싶다.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찾은 즐거움, 내려가는 길에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 방법을 적어 보고 싶다. 남은 날들을 자연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사랑, 쉬지 않고 나아가는 공부, 설렘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나를 가꾸어 가고 싶다.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루틴과 오늘의 선택 옆에 붙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새로움을 찾는다고 늘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제와 다른 질문 하나, 이어지는 만남, 책 한 권, LP판 위에 올리는 떨리는 손, 그리고 창밖의 바람 소리. 그렇게 작은 새로움을 주워 담으며, 나는 조금씩 천천히 새해로 들어선다. 올라가는 꿈이 있었다면, 이제는 지키는 꿈이 있다. 오늘의 나를 오래 데리고 가는 꿈. 그 꿈을 위해 나는 내 몸의 말을 듣고, 음악을 틀고, 책장을 넘기며, 집을 나서며 조용히 새로움을 연습한다, 그리고 기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