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는 본래 한옥에서 집주인이 거처하거나 손님을 맞이하던 공간이다. 집안의 얼굴이자 이웃을 맞이하는 마당이었던 셈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사랑채는 단순한 방이 아니라 소통과 교류가 오가는 중심이었다. 그래서 ‘사랑(舍廊)’은 머무는 곳이자 사람을 향해 열린 공간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동구가 추진해 온 ‘마을사랑채’는 이러한 전통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되살린 공간이다. 민선 7기 이후부터 민선 8기 현재까지 ‘소통과 나눔 공동체’를 구정의 핵심 가치로 삼아 도심공동화로 약화된 주민 관계를 회복하고 주민 스스로 마을공동체를 복원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지난 2019년부터 조성을 시작한 마을사랑채는 현재 관내 동 13곳 중 12곳에서 운영 중이며 모두 주민의 제안과 참여로 탄생했다. 운영 또한 주민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지산2동 사랑채에서는 매주 수요일 ‘수요밥상’이 열린다.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는 시간으로, 혼밥이 일상이 된 시대에 함께 먹는 밥이 사람의 마음을 살려낸다.

학동 사랑채는 옛 남광주역 관사를 리모델링해 조성한 곳으로, 방치되던 건물이 주민들의 발걸음으로 다시 살아났다. 이곳에서는 다문화가정 주민들이 모여 자국 음식을 나누고, 김치를 담그며 한국 문화를 배우는 등 국적과 세대를 넘어서는 소통이 이뤄진다.

계림1동 사랑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방과 후 아이들이 모여 숙제와 놀이를 즐기며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 사랑채가 아이들을 품는다.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가르쳐 드리며 자연스럽게 세대 간 돌봄이 이뤄진다. 최근에는 여행객이나 방문객들도 마을사랑채를 찾고 있다.

지산2동 사랑채에서는 외지인들이 주민들과 함께 밥을 짓고, 학동 사랑채에서는 옛 남광주역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을의 시간을 체험한다.

마을사랑채는 지역 주민만의 공간이 아니라, 도시를 찾은 누구에게나 열린 생활 속 쉼터이자 마을 체험 공간이다. 낯선 이들도 잠시 머물며 밥을 나누고,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 속에서 ‘마을’은 더욱 넓게, 따뜻하게 이어진다.

이렇듯 마을사랑채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건물이나 회의실이 아니라 주민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참여와 자발성이다. 주민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행사에 참여하며 수혜자가 아닌 주체로서 마을 운영에 참여한다.

둘째, 세대 간 소통과 연결이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이를 통해 ‘우리 마을’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자연스럽게 자란다.

셋째,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만든다는 점이다. 사랑채에서의 하루하루가 소소한 모임, 대화, 봉사로 채워지며, 이런 활동이 쌓여 주민 간 신뢰와 사회적 자본을 형성한다.

물론 앞으로의 과제도 있다. 주민 주도의 운영이 지속 가능하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나아가 복지, 문화, 교육 자원을 잇는 지역 허브로 기능을 확장해야 한다. 내년 초 동명동 마을사랑채가 문을 열면 관내 13개 모든 동에 사랑채가 조성돼, ‘전 동 마을사랑채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는 숫자의 완성에 있지 않다. 주민이 웃고, 나누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마을사랑채의 가치는 완성된다. 누구나 찾아와 밥을 짓고 차를 나누며 잠시 머물 수 있는 이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만남이 곧 마을의 힘이 된다.

마을사랑채는 앞으로도 동구 주민은 물론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