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현실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합니다. 이런 혼란을 바로잡으려면 국립묘지법을 개정해 국가폭력 가담자는 안장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5·18기념재단이 주최한 ‘5·18 역사 왜곡 현장 국립대전현충원 탐방’이 이뤄진 지난 29일 현장에서는 참석자들의 굳은 표정과 함께 깊은 탄식 등이 이어졌다.

이날 탐방에는 오월 공법 3단체와 오월어머니집 관계자, 학술 연구자, 광주 지역 대학생 등 40여명이 참여해 대전현충원 내 장군1·2묘역을 둘러봤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립대전현충원은 1985년 국가·사회 공헌자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현재 15만여위(位)가 묘소와 위패봉안실에 모셔져 있다.

해설을 맡은 정성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기획홍보팀장은 현충문에서 “1983년 완공된 현충문 현판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의 필체로 제작됐으나 형 확정 이후 2020년 안중근체로 교체됐고, 헌시비 글씨도 같은 방식으로 바꼈다”며 “대부분의 시설에서 전두환의 흔적을 지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방문할 장군1묘역 이규동 묘에는 여전히 이름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장군1묘역까지 걸어 올라가는 도중 12·12 군사반란과 5·18 진압에 관여한 이규동·유학성·소준열 등의 묘를 볼 수 있었다.

한 어르신은 소준열의 묘 앞에서 “침을 뱉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아 참는다”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를 본 정 팀장은 “이곳에 많은 군인이 묻혀 있지만 5·18 당시 진압을 주도한 전투병과 교육사령관이었던 소준열이란 이름은 광주분들이 똑똑히 기억하실 거다”고 언급했다.

해당 묘 인근에는 5·18 당시 진압 명령을 거부했던 윤흥정 중장의 묘도 있어 앞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한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는 현실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둘레길을 따라 이동한 장군2묘역에는 신군부 핵심 세력인 김윤호·김기택·박준병·김택수·송응섭 등이 안장돼 있었다.

또 12·12 군사반란에 끝까지 맞서 영화 ‘서울의 봄’의 주연 ‘이태신’의 모티브가 된 장태완 소장의 묘 바로 왼쪽에는 당시 보안사령부 보안처장으로 도·감청을 주도하는 등 반란의 주역이었던 정도영의 묘가 나란히 자리해 모순된 국립묘지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목도했다.

이어 5·18 당시 20사단을 지휘했던 박준병의 묘 앞에 다다르자 “파묘하라”, “광주학살 책임자” 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나회의 핵심 인물로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박준병은 5·18 당시에도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지만 1996년 내란수괴 재판 대상자 16명 가운데 유일하게 무죄를 받았다는 게 정 팀장의 설명이다.

해설이 끝난 뒤에도 상당수가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묘역을 떠나지 못했다.

탐방에 참여한 장상원(25·조선대 역사문화학과 졸업)씨는 “역사 속에서 보던 인물들의 묘를 직접 보니 담담하면서도 묘한 충격을 받았다”며 “국립묘지는 진정한 애국자만 안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오월어머니집 관계자는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이 1년이 다 되간다”며 “역사 정의를 바로잡는 것 중 하나가 국립묘지법 개정을 통한 대전현충원 내 군사반란 가담자 등의 묘 이전”이라고 강조했다./이연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