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 어머니를 살해한 딸과 이를 도운 혐의로 처벌받은 아버지가 사건 발생 16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광주고법 형사2부(이의영 고법판사)는 28일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각각 확정받았던 백점선(75)씨와 그의 딸 A(41)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A씨의 경우 별도 적용된 무고 혐의에 대해선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 유지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백씨 부녀는 지난 2009년 7월6일 순천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나눠 마신 주민 4명 중 2명이 죽고 2명이 다친 사건의 범인이란 오명을 ‘일단’ 벗었다.

사망한 피해자 중 한 명은 백씨 부녀의 아내이자 친모였는데, 검찰이 피해자와 피고인들이 ‘성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지점에 주목하면서 이 사건은 다른 의미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또 검찰은 이 사건 수사가 본격화될 무렵 A씨가 B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으로 보며 백씨 부녀의 ‘자백’을 바탕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백씨 부녀의 살인 행위에 대해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결정적 증거로 꼽힌 백씨 부녀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유죄 판결했다.

이후 대법원이 2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면서 백씨 부녀는 2012년 유죄를 확정 받았다.

그로부터 약 10년 만인 2022년 백씨 부녀는 검찰의 위법·강압 수사 및 수사권 남용을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특히 수사관과 검사 등이 특정 진술을 유도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백씨 부녀 자백의 증거 능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같은 문제 제기를 받아들인 법원이 지난해 1월 재심 개시와 형 집행 정지 결정을 하면서 백씨 부녀는 풀려났고 이들에게 유죄가 선고된 2심부터 재판이 재개됐다.

당시 백씨 부녀를 수사했던 검사와 수사관은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위법·강압 수사는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으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심 재판부는 “최초 자백을 비롯한 진술 조서 작성 시 신뢰 관계자의 동석이 이뤄지지 않은 점, 자백 진술의 개연성을 볼 때 수사 기관에서 유도 심문을 반복했던 점이 인정된다”며 “당시 사건 담당 검사는 부녀 관계에 대해 제보를 받았다고 했지만, 이 법정에서 당사자들의 진술 내용에 비춰보면 치정이란 범행 동기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선고 후 A씨는 “검찰과 수사관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증거를 확보하고, 진실한 수사를 했으면 한다”며 “앞으로 이러한 강압 수사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백씨 부녀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사법 피해자들의 삶이 무죄로나마 회복되기를 바란다”며 “실적에 눈이 먼 공권력이 약자의 인권을 외면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검찰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안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