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 첫 부임지에서 가정방문을 할 때였다. 교실 뒷정리를 하고 나오니 운동장에서 줄넘기하던 여자아이들이 달려와 숨을 헐떡이며 이른다.

“선생님! 남자애들이 다 가버렸어요.”

오늘 가정방문 가는 동네의 여학생 두 명에게 함께 가자고 했더니, 마을 아이들 모두 같이 가겠다고 조르는 바람에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남자아이들이 말도 없이 가버린 것이다. 먼저 달려온 남이가 내 가방을 낚아채 들더니, 다음에 온 아이는 내 왼손을 잡는다. 그 뒤 비슷하게 달려온 두 아이는 내 오른손을 잡으려고 쟁탈전을 벌인다. 진이 양보하고 친구의 손을 잡는다. 그 잡은 손을 그네처럼 흔들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절로 미소가 나온다.

학교 앞에 있는 둑 위로 올라섰다. 집에 간 줄 알았던 2학년 남자아이들이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 냇물 속으로 징검다리를 놓고 있었다. 셋이 한 조가 되어 넓적하고 큰 돌을 나른다. 영양실조에 걸려 쉬는 시간 화장실에 보내는 것을 깜박한 날이면 어김없이 앉은 자리에서 쉬를 해버리는 철이도 비척거리며 작은 돌을 옮긴다. 그런 꼬마들에게 박수를 보내듯 시냇물이 반짝이며 도란거린다. 맨발로 건너지 않아서 좋다며 팔짝팔짝 뛰는 여자 친구들과 가슴이 찡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나는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마지막 돌을 놓자 꼬마들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팔을 벌려 꼬마들을 안았다. 아이들은 지난번에 온 큰비로 돌이 떠내려갔는데 어른들이 아직 징검다리를 놓아주지 않아 저 아랫마을 시멘트 다리까지 가서 개울을 건너다닌다고 한다. 학교에 늦은 날에는 지각하지 않으려고 맨발로 내를 건너는데 발이 ‘겁나게’ 시리단다. 아랫마을로 돌아가면 선생님이 왔다 갔다 할 때 멀고, 맨발로 물을 건너면 선생님 발이 시릴 테니 우리가 먼저 와서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나는 꼬마들의 말을 들으며 그들의 작고 빨간 발의 물기를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수정같이 맑은 물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꼬마들의 사랑이 담긴 징검다리. 나는 지금도 특별한 선물을 준 꼬마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촉촉이 젖어온다. 어느덧 그 꼬마들은 오륙십 대 중반이 되었겠지만, 그때의 고운 마음으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꼬마였던 그들이 그립고 그립다.

<김경순 약력>

▲2001년 ‘한국수필’, 2010년 ‘문학예술’ 시 등단

▲수상 : ‘문학세계’ 수필 본상, 빛고을 책 읽는 시민 선정, 광주시장상 외 다수

▲한국문인협회 28대 대외협력위원, 광주문협·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징검다리수필·광주여류수필 회장 역임

▲세계펜클럽 회원, 현 광주여류수필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