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라플뢰르作 ‘별빛 삼부작’

레나타 야니셰프스카作 ‘당신은 영원히 디스코 리듬 안에 있어요’

밥 파우스트作 ‘우리는 진실을 믿는다’

“이게 정말 코드로 만든 거라고요?”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화려한 그래픽 이미지 앞에서 관람객이 눈을 떼지 못한다. 겹치고 흩어지는 글자, 리듬을 타듯 반짝이는 타이포그래피, 우주처럼 펼쳐지는 이미지들. 작가 7명이 ‘코드’라는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낸 시각 실험이다.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은 아트센터 나비와 함께 오는 8월31일까지 전시 ‘코드, 하나의 캔버스: AI 시대의 창의적인 그래픽’을 개최한다. G.MAP 제3·4전시실과 미디어월 등을 활용한 이번 전시는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 선 작업들을 통해 프로그래밍 언어가 어떻게 감성적 언어로 바뀔 수 있는지 보여준다.

참여 작가 7명 중 다수는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이다. 이들은 흔히 ‘딱딱한 명령어 집합’으로 여겨지는 코딩 언어를 시각적으로 번역해 정체성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확장해 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목홍균 학예사는 “디자인과 예술은 이제 기술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만나는 시대”라며 “이번 전시에서도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코드를 예술적으로 풀어내는지 만나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객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센서가 설치된 작품, 키보드를 두드리면 한글과 영어가 동시에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작업도 있다. 미디어아트 전시지만 모든 작품이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니다. 정지된 이미지도, 오브제도 각자 ‘코드의 언어’를 품고 있다.

전시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먼저 코드가 이미지의 형식과 언어의 리듬, 움직임의 문법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탐색하는 ‘형태로서의 코드’ 섹션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피터 조(Peter Cho)의 ‘한글스케이프’는 그 대표작 중 하나다. 작가는 키보드 하나로 두 언어를 동시에 입력하게 하는 방식을 사용, 언어의 이중 구조와 정체성을 실험한다. ‘삶’과 ‘life’가 번갈아 나타나는 장면에선 마치 서로 다른 두 언어가 같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작품 ‘우리는 진실을 믿는다’를 선보이는 밥 파우스트(Bob Faust)는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가져온 문장을 시각화했다. 꽃, 무지개, 비눗방울 같은 이미지가 반복되며 감정의 잔상처럼 화면을 한가득 채운다.

잭 리버만(Zach Lieberman)과 MIT 미디어랩이 협업한 ‘퓨처 스케치스’는 움직임, 글자, 코드를 연결하는 실험이다. 화려한 영상 이미지가 수없이 반복되며 단박에 시선을 잡아끈다. 코드에 대한 아주 작은 수정만으로도 180도 달라지는 결과값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코드를 ‘시각적으로 인지’하게끔 한다. 다음으로 ‘사적인 기계’ 섹션에서는 여성성, 생태 감수성, 우주적 상상력과 같은 주제를 탐구한다. 수잔 디트로이(Susan Detroy)는 미국 오리건주 작은 숲을 걷는 듯한 영상 작품 ‘야포아의 작고 깊은 숲’을 선보인다. 실제 산책로의 풍경과 소리를 담은 이 작품은 ‘코드가 만든 시적 명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상이 상영되는 거울방에 들어간 관람객들은 조용한 풍경과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며, ‘감각의 여운’에 빠져들게 된다.

레나타 야니셰프스카(Renata Janiszewska)의 ‘당신은 영원히 디스코 리듬 안에 있어요’는 화려한 조명과 빠른 비트, 디지털 합성이 뒤섞인 작품이다. 은빛 디스코볼이 회전하고 세련된 베네치아인들이 유희하는 장면들이 우리를 감각적인 시청각 세계로 안내한다.

카렌 라플뢰르(Karen LaFleur)는 별의 탄생과 소멸을 주제로 한 3부작 애니메이션 ‘별빛 삼부작’을 선보인다. 시간, 파동, 반사 등 보이지 않는 우주의 움직임을 감각적인 한 편의 영화와 같이 구성했다.

전시 제목인 ‘코드, 하나의 캔버스’처럼 참여 작가들은 ‘코드’라는 기술 도구를 회화의 ‘붓’처럼 사용한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을 시각화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에서 일부만 소개됐던 작품들을 새롭게 구성하고, 광주에서만 볼 수 있는 신작과 몰입형 설치 작품까지 추가해 선보인다. 15일 오후 5시에는 작가 고휘의 오프닝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Microbial Objects Sound’를 주제로 한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로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예정이다.

김허경 G.MAP 센터장은 “디자이너가 예술가로서 자신의 언어를 가진다는 건, 이 시대 기술 예술의 중요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국내외 유망한 미디어아티스트들과 협력해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각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허경 G.MAP 신임센터장 “함께 누리는 미디어아트 공간 구축”

김허경 G.MAP 신임센터장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광주의 거점 공간인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의 새로운 출발에 기대가 모이고 있다.

개관 4년차를 맞은 G.MAP은 지난달부터 김허경 신임 센터장의 지휘 아래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김 센터장은 “창의도시 간 국제교류, 시민참여 확대, 지역작가와의 접점 등 핵심 역할을 명확히 하고, 단단하게 구조를 세우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1호 박사학위 취득자이자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원으로,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비평 활동을 이어온 실무형 인물이다.

2020년에는 광주시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기본 운영계획 수립 용역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하며, 광주 미디어아트 정책 방향 수립에 실질적 기여를 했다.

지난해 G.MAP에서 열린 창의도시 10주년 아카이브 전시 ‘헤테로포니’ 게스트 큐레이터로도 참여한 바 있다.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했던 그는 한국미술사에서 지역의 공백을 메우고자 ‘호남 근현대미술사’(2018)를 집필하며 ‘광주’에 천착해왔다.

김 센터장은 “예술의 흐름 속 이 도시가 가진 빛과 민주·인권·평화의 정체성이 결국 ‘미디어’라는 매개를 통해 재조명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지역 미술이 쌓아온 역사성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미디어아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G.MAP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랩(Lab)’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전문 예술인 대상 ‘프로젝트 랩’, 입문자 대상 ‘인큐베이팅 랩’, 시민 대상 ‘시티즌 랩’, 청소년 대상 ‘유스 랩’, 국내외 전문가 초청 세미나 ‘리서치 랩’까지 총 5개 랩을 통해 창작과 교육, 실험의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 센터장은 “다양한 계층이 이곳에 와서 창작하고, 배우고, 향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며 “창작 공간과 프로그램을 나눠 체계화함으로써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변화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오는 12월 1층 로비에는 시민 체험 중심 공간이 조성된다. 전시는 주로 3층에서, 교육 및 창제작은 2층과 지하 1층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끝으로 그는 실행력과 지속 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G.MAP을 시민의 기억에 오래 남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시 한두 번으로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과 예술가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경험을 남기고 싶어요. 누구나 편하게 오가며 예술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는 G.MAP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