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시집 ‘밥값’, 창비, 2012)

[시의 눈]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가. 프르드리히 니이체는 ‘초인’에서 묻는다. 인간으로 태어나 스스로를 극복하고 새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가를. 기존의 도덕률과 가치체계가 붕괴된 혼돈의 시대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어떻게 삶을 경영해야 밥값을 할 수 있는가를. 수많은 질문 중에서 이 질문은 가장 근본적 질문이 될 것이다.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화자가 답을 삼아 내린 결론이다. 지옥에 다녀오겠다니. 생뚱맞다. 예상 밖의 대답이다. 중죄를 짓고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악마와 함께 영원히 벌을 받는 지옥에 걸어 들어가겠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죄만 짓고 살았단 말인가.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를 물을 때 답은 돌연 진지해진다. 엄숙해진다. 늘 깨어 주어진 몫과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때 대답이 사뭇 궁색해질 때가 허다하다. 지옥이라도 다녀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늦게나마 밥값을 하리라는 가열찬 자기갱신과 의지에서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음을. 살아간다는 진정한 의미를 깨우칠 수 있음을. <윤삼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