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고원길 5구간을 걷기위해 진안으로 향했다. 진안의 마을들은 첩첩산중을 이룬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은 차량의 속도까지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진안은 느림의 고장이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산과 하천, 마을 풍경들이 한적하고 포근하다.

진안 고원길 5구간 출발지 오암마을에 도착했다. 진안 고원길 5구간 안내 표지판이 서있는 오암1교 앞에서 두 하천이 만나 달길천이라는 이름으로 오암마을 앞을 흘러간다. 오암마을 골목을 지나니 인삼밭이 자리하고 있다. 진안 곳곳에는 인삼을 재배하는 곳이 많다. 이른 봄이라 대지는 아직 겨울 색을 띠고 있지만 자세히 보니 마른 풀잎 속에서 새싹들이 나오고 있다. 길은 황소마재로 통하는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주변은 400-500m 높이의 산들이 첩첩하고, 대부분 부드러운 육산을 이루고 있다. 진안의 평지고도가 대체로 300m 내외여서 마을에서 보면 주변 산들이 높지 않은 야산처럼 보인다. 황소마재에 도착하니 동쪽 멀리에서 뾰족하게 솟은 마이산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진안 고원길 5구간이 지나는 길 주변은 400-500m 높이의 산들이 첩첩하고, 대부분 부드러운 육산을 이루고 있다.

황소마재는 진안군 성수면과 마령면의 경계를 이룬다. 성수면 오암마을에서 황소마재를 넘으면 마령면 장재동마을이다. 진안 고원길 5구간은 네 개의 고개를 넘게 되는데, 황소마재는 성수면과 마령면을, 네 번째 고개인 판치재는 마령면과 부귀면을 잇는다. 그래서 진안 고원길 5구간을 ‘고개 너머 마령길’이라 부른다.

황소마재를 넘어 장재동마을 방향으로 내려선다. 좁은 골짜기에 조그마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장재동마을에 도착했다. 협소한 농경지와 몇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 소박한 산골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 작은 마을에 천주교 공소도 자리하고 있다.

추동천이라 불리는 작은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니 추동마을이 둥지를 틀고 있다. 마을이 형성될 때 마을 주위에 가래나무가 많이 있어서 가래울(楸) 또는 가래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래울을 한자로 기록하면서 추동(楸洞)마을이 됐다.

추동마을은 진안에서도 최대 오지에 속한다. 진안에는 난리가 나면 피신할 수 있는 깊은 오지로 ‘동비서추’라는 말이 있다. ‘동비서추’는 동쪽의 백운면 비사랑마을과 서쪽의 마령면 추동마을을 가리킨다.

추동마을 앞길을 지나 가래울재라 불리는 고개를 넘는다. 가래울재는 산 너머 신동마을로 통하는 고개다. 임도로 이어지는 고갯길은 힘들지 않고 쉬엄쉬엄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은 편이다. 가래울재를 넘어서니 신동저수지와 신동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마을로 내려가는 골짜기 주변 밭에는 여러 종류의 조경수들이 재배되고 있다. 신동마을 주변 산비탈에서는 고사리를 많이 재배한다.

신동저수지 아래쪽 산속 깊숙한 곳에 신동마을이 둥지를 틀었다. 외부와 멀리 떨어진 신동마을에도 봄기운이 넘쳐흐른다. 따스한 봄바람에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마을은 한없이 조용하고 한가하다. 내동재로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신동마을과 신동저수지, 가래울재가 한눈에 바라보인다.

내동재를 넘으니 산중턱을 지나가는 새만금포항고속도로가 가깝게 다가온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으로 이뤄진 마이산이 앞쪽 산줄기 너머에 쫑긋 솟아 눈길을 사로잡는다. 황소마재에서는 약간만 보였던 숫마이봉까지도 고개를 내밀었다. 주변의 비슷비슷한 산세와 비교해 말귀처럼 쫑긋 솟은 마이산은 군계일학이다. 높이로만 보면 진안에는 1천 m 내외의 산도 많지만 진안의 대표적인 산으로 마이산(685m)을 꼽는 이유는 이러한 독특한 생김새 때문이다.

울창한 숲을 이룬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판치저수지를 만난다. 판치저수지 둑 너머로 마이산 광대봉이 바라보인다. 저수지 아래에는 판치마을이 자리했다. 판치마을은 추동마을이나 신동마을에서보다는 마을 앞쪽으로 농경지가 더 넓게 자리하고 있다.

고원길은 판치마을로 들어서지 않고 새만금포항고속도로 밑을 지나 임도로 이어진다. 임도는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산비탈을 몇 구비 돌고 돌아간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사뭇 경쾌하다. 겨우내 추위에 움츠렸을 새들도 날씨가 풀리니 신이 났나보다.

판치재에 도착하니 커다란 느티나무와 두 개의 의자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판치재는 진안군 마령면과 부귀면의 경계이면서 두 지역을 이어주는 고개다. 진안 고원길 5구간 네 고개 중 마지막 고개를 넘었다. 높지 않은 고개를 넘어 산속에 숨어있는 작은 마을을 만나고, 또 다시 고개를 넘어 소박한 마을을 만나며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포근해진다.

판치재에 도착하니 커다란 느티나무와 두 개의 의자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진안 고원길 5구간은 높지 않은 고개를 넘어 산속에 숨어있는 작은 마을을 만나고, 또 다시 고개를 넘어 소박한 마을을 만나기를 반복한다.

판치재에서 태양광시설을 지나자 산속에 파묻혀있는 서촌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서촌마을 뒤편 언덕에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서촌마을로 내려가서 골목길을 따라 느티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선다.

느티나무에 도착하니 마이산이 또 다시 모습을 드러내준다. 서촌마을 사람들은 외로울 때나 즐거울 때 마을 뒤편 언덕에 올라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이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렸을 것이다.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마이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서촌마을 뒤편 언덕에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곳에서는 마이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서촌마을 사람들은 외로울 때나 즐거울 때 마을 뒤편 언덕에 올라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이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렸을 것이다.

느티나무 언덕을 지나 오솔길을 걷다가 전옥례묘소를 만난다. 전옥례는 동학혁명 지도자 전봉준의 딸이다. 아버지 전봉준이 관군에 체포돼 교수형에 처해지자 전옥례는 이름을 김옥련으로 고치고 15살 나이에 화를 피해 마이산 금당사 공양주로 들어갔다. 금당사에서 공양주로 일하던 전옥례는 23세 때 이찬영이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진안 고원길 5구간에서는 전옥례 묘소도 만난다. 전옥례는 동학혁명 지도자 전봉준의 딸이다.

평생 본인의 신분을 숨기고 살았던 전옥례는 1968년 자신이 전봉준의 딸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 세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추모비에 따르면 전옥례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삶도 훌륭했다고 한다. 전옥례는 1970년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전옥례묘소에서 산길을 내려오니 진안에서 전주로 통하는 26번 국도가 지나간다. 고원길은 외판치마을 앞길을 따라 장승삼거리로 이어진다. 장승삼거리에서 메타세콰이어길을 거쳐 모래재로 넘어가는 도로는 부귀면소재지 쪽으로 4차선 국도가 뚫리기 전까지는 진안에서 전주로 가는 유일한 도로였다.

장승마을 앞 제방을 따라 걷는데 마을 뒤편에 투구봉이라 불리는 산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아있다. 겨울을 견딘 마을 앞 농경지는 파종을 기다리며 봄을 즐기고 있다. 장승마을에서 2㎞ 정도를 더 걸으면 진안 고원길 5구간 종점인 메타세콰이어길에 도착한다.

장승마을 앞 제방을 따라 걷는데 마을 뒤편에 투구봉이라 불리는 산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아있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진안 고원길 5구간은 깊은 산골에 자리한 작고 소박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한 네 개의 고개를 넘는 길이다. 고개를 넘다보면 쫑긋하게 솟아있는 마이산의 모습을 인상 깊게 바라볼 수 있다.
※코스 : 오암마을→황소마재→추동마을→가래울재→신동마을→내동재→내동마을→판치재→서촌마을→외판치→장승삼거리→장승초교→메타세콰이어길
※거리, 소요시간 : 15.4㎞, 5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오암1교(전북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 5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