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을 해야만 하는 사회인으로서 생명을 가진 백성을 의미하는 ‘민생’이라는 단어가 더욱 뼈져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민생을 무엇보다도 염두했다는 올해 국정운영방안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정책들도 몇몇 눈에 띄지만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만하다.

생명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복잡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아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바로 이 순간’을 인지하는 시점이 아닐까?

독자들은 머리가 복잡할 때 어떻게 하는가? 필자는 가장 좋은 해결책으로 이타저타 없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기를 세 네번 정도 반복한다. 그러면 정신없고 부산스럽던 영혼이 몸 안으로 다시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가장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아마도 먹고사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유는 비록 꿈을 쫓으며 사는 삶일지언정 기본적인 생활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이상을 바라보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상은 할 수는 있어도 상상 속에서 실재할 수는 없을 일이다. 달리 말하자면 현실을 외면하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삭줍는 여인들에 묘사된 서민의 모습-
올바른 리더가 이끄는 나라는 서민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나라일 것이다. 밀레의 작품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 등장하는 농촌풍경은, 19세기 민주주의에 기초가 된 시민혁명이 한창이던 당시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전해주는 의미가 매우 컸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세상만 화폭에 담아 실제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화풍이 한창 유행할 시기, 프랑스 농촌에서 노동자 계층의 힘든 생활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운 사실주의 화풍의 밀레 작품은 당시 진보세력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작품을 보면 한창 수확이 끝난 밭에서 끼니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땅에 떨어진 곡식을 열심히 주워 담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로는 수확물을 가득 실은 마차와 마을의 풍경 그리고 집채만 하게 쌓인 건초더미, 말을 타고 있는 남자들과 일꾼들이 묘사되어있다.

특히 부농들에게 갈 마차에 차고 넘치는 곡식과는 대조적으로 하루종일 주워 모아도 빵 한 조각 만들어낼 양이 되지 않는 밀알을 열심히 줍는 여인들의 모습은 당시 서민의 경제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안타까운 시대상이기도 하다.

- 백성을 사랑한 정조…민생을 화폭에 담은 단원 -
조선시대 서민들의 삶을 기록한 그림으로는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서당에서 훈장에게 혼이나 울고 있는 아이가 그려진 풍속화 ‘서당’은 광고 카피에도 여러 번 사용됐을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단원 김홍도 作 ‘서당’ <위키피디아 검색>

이 작품을 살피면 학생에게 매질은 했지만 측은한 눈을 하고있는 정감넘치는 훈장 선생님에게 시선이 먼저 간다. 그 밑으로는 울고있는 학생이 그리고 양옆으로는 다양한 나이대와 신분 차이가 나보이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장가를 가 머리에 갓을 쓴 학생, 댕기머리의 어린 학생들과 헤진옷을 입은 꼬마까지, 주로 양반자제들만 다닐 수 있던 서당이 정조 이후로 평민들도 다닐 수 있게 된 당시 시대상까지도 함께 살필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외에도 씨름, 타작, 행상, 자리짜기, 고누놀이, 논갈이, 주막 등 조선후기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알아볼 수 있을 유명한 풍속화를 많이 남긴 화가가 바로 김홍도이다.

스승이자 문인화가였던 강세황의 천거로 왕실 도화서 화원이 된 김홍도는 29세에 영조와 당시 왕세자였던 정조의 초상을 그릴 정도로 능력이 출중했던 화가였다.

특히 조선의 성군으로 알려진 정조대왕의 특별한 신임을 얻으며 화가로서의 전성기를 보냈던 그는 왕을 보필하며 왕이 서민들의 삶을 두루 살필 수 있도록 풍속도 제작에 힘을 썼다.

정조는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로 복잡한 정치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24년을 재위하며 나라를 잘 다스린 성군으로 세종대왕과 함께 언급되는 왕이다.

규장각을 설치해 학문연구에 힘썼으며 당파싸움을 억제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했을 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왕도정치에 모범을 보인 왕이였다. 특히나 백성들의 삶을 중요하게 여겨 굽어살필 줄 아는 면모는 나라 발전에 큰 기틀이 돼 주었다.

즉위한 이듬해인 1777년 26세에 그린 매화도에서도 날카로운 힘과 기백을 찾아볼 수 있다. 작은 외숙에게 드리는 내용을 적은 글과 그림에서는 왕으로서 갖춰야 할 깊은 학문과 예술적 소양을 함께 살필수 있어 정조가 조선후기 문예부흥을 가져온 드문 군주였음을 알게 해준다.

정조대왕 作 ‘매화도’ <위키피디아 검색>

어진 임금 밑에서 좋은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도화서가 규장각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풍속화를 육성해 서민들의 생활상을 민생보고서처럼 받아보고자 했던 정조의 생각이 읽혀진다.

이처럼 백성들의 수고를 알고 정치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줄 민생 그림을 가장 많이 요청했던 왕이 세종과 정조였다는 점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런 정조 대왕이 민생을 살필 때 가장 염두했던 단어가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그의 정책들 또한 오늘날에 사용되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였고, 실제 서민 생활의 가장 근간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했었음을 몇몇 사례만 봐도 금방 알아챌 수가 있다.

수원화성을 축조할 때 사망사고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던 점만 보아도 그렇다. 특히 근로자로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고 추운 날씨에 일해야 할 인부들을 위해서 당시 높은 신분들만 착용할 수 있었던 털모자를 제공한 점도 그렇다.

<이현남 ·문화비평/갤러리현 대표>

또한 신분제 타파를 위해 노력했다. 생계가 어려워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국가에서 돈을 주고 젖동냥까지 구해주었을 정도다. 게다가 이런 아이들을 관아에 따로 모아 먹을 것을 주고 교육까지 시킨 것은 서민의 실생활을 얼마나 깊이 살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지금이야말로 노동자의 삶을 냉철하게 바라본 사실주의 화가들과 왕이라는 지위임에도 인권을 먼저 생각했던 정조처럼 다시 한번 민생을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살아가는데 그깟 허례허식과 이념이 대수가 될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민생현장을 더 자주 살피고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이 돼야 할 시점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