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자유롭고 책임감있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이다. 몸의 생식과 관련된 권리에는 임신, 출산, 피임, 낙태 등이 있다. 여성은 임신, 출산에 대한 선택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적인 피임방법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아야 하며 원치 않는 임신 시에는 안전한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낙태죄 폐지운동과 함께 포괄적 재생산권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그 후 헌법재판소는 형법의 자기낙태죄 조문과 의사에 의한 낙태죄 조문에 관한 헌법소원에 두 차례 판단을 한다. 헌재는 2012년에는 합헌결정을 하지만 2019년에는 헌법 불합치결정을 내린다. 헌법상 보장되는 자기결정권과 알 권리, 국가의 모성보호와 건강권 등의 측면에서 볼 때 헌법에 합치하지 않다고 판결한 것이다. 헌재는 여성의 재생산권은 사회적 의무가 아니라 기본권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진일보한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낙태죄가 명시된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개정됐을까? 그렇지 않다. 정부와 국회가 5년이 지나도록 법 개정을 미루고 있어서 법 공백이 지속되고 있다. 지금의 모자보건법을 보면 임신중지에 대한 허용범위는 그대로 있고 처벌규정은 사라졌다. 다시말해 허용범위를 넘긴 임신중지는 위법행위이지만 처벌받지 않는 위법행위라는 것이다. 또 세계보건기구 WHO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유산유도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관련의약품의 사용승인을 미루고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자. 1973년 미연방 대법원은 낙태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한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라고 불리는 이 판결은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가 낙태의 권리를 포함하는지에 관한 미연방 대법원의 중요한 판례다. 당시 미대법원은 여성이 임신 후 6개월까지 임신중절을 선택할 헌법상의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했다. 태아는 사람이 아니라 잠재적 생명이므로 헌법상의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태아가 자궁 밖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시기, 즉 임신 6개월 이전에는 여성이 어떤 이유로든 임신상태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022년 미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다. 낙태논란은 2024년 미국대선에서 이슈로 떠올랐다. 낙태반대를 선언하고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관련 단체에 자금지원을 차단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트럼프 행정부의 임신중지 반대가 세계적 이슈가 되는 이유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영역에서 가장 많은 원조기금을 제공하는 국가다. 미국의 원조를 받는 국가에 거주하는 가임기 여성은 6억9천만 명으로 전 세계 가임기 여성의 약 36%이다. 임신중지 반대로 저소득 국가와 의료체계가 부실한 지역에서 원치않는 임신과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로 인한 합병증 치료를 못 받아 사망하게 될 여성이 급증할 것이며, 이는 성 평등 진전을 위협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낙태권 후퇴 움직임과는 반대로 헌법에 낙태권을 명시한 나라가 있다. 바로 프랑스다. 1975년부터 낙태를 합법화하고 건강보험에서 낙태 시술비를 100% 보장하는 프랑스는 2024년 3월 헌법 제34조에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헌법에 명문화된 세계최초의 사례다. 헌법개정안이 통과되자 에펠탑에서는 ‘나의 몸, 나의 선택’이라는 축하메시지가 밤하늘을 밝혔다.

낙태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낙태를 선택해야만 하는 피치 못할 상황이 있을 뿐이다. 재생산권은 여성이 사회적 책임을 능동적으로 감당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관련법이 개정돼야 지방자치단체를 통한 사회적·법적·경제적 지원시스템이 마련되고 여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법 개정을 미루는 것은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