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휘몰아치는 바람에 날리는 눈발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 놓았다. 정적과 고요함이 주는 침묵 속에서 마치 무언가를 외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새벽녘, 다가오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신성함과 소중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폭설에 갇혀 눈이 녹을 때까지 마을에 고립될 것이다. 이런 고립이 주는 즐거움이야말로 겨울의 묘미다.

시골에 살다보니 겨울이 그렇게 좋다. 겨울은 침묵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봄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안으로 여무는 시기이며, 몸을 단련하고 내적으로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겨우 살아내라고 ‘겨우살이’라 했던 걸까. 겨울이라는 단어의 어원도 “가만히 집 안에 있는 때”를 의미한다. 정서적으로 내면의 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시기다. 모든 동식물은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견뎌낸다. 나무들은 잎을 떨군 채 앙상한 모습으로 겨울을 지낸다. 땅 위의 식물들은 눈 속에서 숨을 죽이며 최소한의 영양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땅속 동물들은 동면을 위해 깊숙이 숨어든다. 땅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미묘한 숨결을 느끼며 나 역시 폭설에 갇혀 텅 빈 시간을 채우며 오늘을 즐겨야겠다.

아침에는 소복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집 앞 눈을 치운다. 눈을 좋아하는 반려견 미니와 함께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눈춤을 춘다. 보이차 대신 진한 드립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곁들여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고립된 하루를 책과 함께 보내며 멋진 문장을 찾아 음미한다. 하얀 겨울날, 나만을 위한 시간을 온전히 누리며 멋진 하루를 만들어 갈 것이다. 도시에 살 때는 바쁜 일상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일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시골에 와서야 밤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게 됐다. 시골의 사계절은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계절의 경계에서는 미세한 변화마저 몸으로 감지된다. 겨울에는 유독 즐거운 추억들이 쌓여서 더욱 좋다.

한때는 겨울캠핑을 즐겨 다녔다. 지금은 캠핑장에 전기도 들어오고 관리도 잘 돼 있지만, 예전에는 텅 빈 땅뿐이었다. 10년 넘게 캠핑을 하면서 겨울방학이 되면 며칠씩 캠핑장에서 지내곤 했다.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장성 백양사로 캠핑을 갔다. 처음엔 텐트가 한 두 개 있었지만, 폭설이 내리자 다들 철수하고 나만 남았다. 텅 빈 캠핑장에서 반려견 리트리버 맥스와 함께하는 캠핑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다음 날부터 폭설이 계속 내리면서 자동차 운행이 불가능해졌다. 텐트 밖에는 굵은 고드름이 열리고, 가져간 장작과 석유도 떨어져 인근 상가에 도움을 청해 겨우 버텼다. 추위와 불편함 속에서도 홀로 즐기는 캠핑의 매력은 더욱 깊어졌다.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하고, 그 속에서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듯한 순간은 고독의 정수를 느끼게 했다. 자정이 넘어 잠들려던 순간, 텐트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술자리를 함께 하자는 권유였다. 두 친구가 캠핑을 왔는데, “이런 폭설 속에서 캠핑하는 사람이 있을까?”하고 내기를 했다고 한다. 친구 중 한 명이 이겼고, 덕분에 나는 그들과 함께 술을 나눌 수 있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함박눈이 내리는 깊은 밤, 모닥불을 둘러싸고 나눈 술잔의 따뜻함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굵은 눈발 속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며 눈을 먹던 맥스의 모습도 선명하다.

지난 3년 동안 즐겼던 오토바이 라이딩의 추억도 오랫동안 남아 있다. 겨울은 눈길이 미끄러워 라이딩하기 어려운 계절이다. 그래서 봄을 기다린다. 문제는 추운 날씨에 마당에 세워둔 오토바이의 배터리가 방전된다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 이불을 덮어주고, 가끔 시동을 걸어준다. 날씨가 조금이라도 풀리면 가죽 재킷을 단단히 걸치고 라이딩 여행을 떠난다.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는 라이딩은 위험하지만, 그만큼 짜릿하다. 황량하고 거친 시골길을 두둥두둥, 질주하는 쾌감은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숨죽인 겨울날 긴장과 짜릿함이 교차하는 라이딩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겨울의 추억들이 하나둘 쌓여가기에 겨울이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또 다른 겨울날, 새로운 추억을 찾아 떠나며 내일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