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 전남이 별개의 행정구역이 된 것은 1986년 광주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될 때부터다. 40년이 채 되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는 광주·전남의 문화와 정체성의 뿌리가 같다는 말이다. 인간 삶의 축적이 곧 역사다. 무등산이 낳은 광주·전남의 인물은 셀 수 없이 많다. 남도 출신은 아니지만 다양한 연유로 남도와 인연을 맺은 이들도 있다. 무등산이 낳고, 무등산이 품은 남도 인물은 오늘날 우리 삶의 방향키가 된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긍이자 자존이며 교훈이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현대인들에게 교훈을 전해줄 남도 인물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나주에서 태어나 전남대 국사교육학과와 동 대학 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역사 교사를 역임한 그는 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남도 인물 열전’ 기획 시리즈를 준비 중인 노 원장을 만나 역사학자로서의 신조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남도 인물 열전’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남도 땅에 살았던 분들은 얼마나 될까.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 오늘 우리들에게 기억되는 인물 그리고 그들 중 기림을 받는 인물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봤다. 남도라는 공간에 살았던 이들 중 높은 관직에 올랐다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기억하지는 않는다. 온몸을 바쳐 시대정신을 실천하거나 국난 가운데 자신을 던져 이웃과 동료를 구하는 등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 인물이 남도를 대표하는 인물일 것이다. 남도인물이 얼마나 멋진 삶을 살아왔는지 소개하고 싶다. 이러한 분들의 삶은 과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와도 연결돼 있으며 우리의 삶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바로 ‘남도 인물 열전’을 기획한 이유다.

▲이번 기획 시리즈 집필 순서 및 인물 선정 기준은.

-남도가 품은 인물 2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집필 순서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지금의 대한민국까지 태어난 연대를 기준으로 한 시대순이다. 사서에 등장하는 최초의 남도인 ‘왕인’ 박사가 이번 기획 시리즈의 첫번째 인물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남도 인물이 많아 선정하기 까다로웠지만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먼저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이다. 삼국시대나 고려, 조선시대 인물의 경우 삼국사기나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문집이나 서원, 사당 혹은 기림석 등에 기록이나 흔적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시대정신을 실천한 인물이어야 한다. 특히 조선시대 말기나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시대정신은 항일·독립·민주였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시대정신을 앞장서 실천한 분을 선정했다. 김덕령 등 의병장, 김철 등 독립운동가, 윤상원·이한열 등 민주열사가 포함돼 있다. 세 번째로, 남도의 여성 인물을 찾으려 했다. 우리 역사에 여성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조선시대까지 남도를 대표하는 인명록에 여성은 없었다. 이번 기획 시리즈에서는 주로 근현대에 살았던, 시대정신을 위해 헌신한 여성을 찾아 소개해보고 싶다. 네 번째는 광주에서 도로명 또는 길 이름에 등장하는 분들이다. 광주에서 인물을 기리는 도로명은 35개, 인물을 기리는 길은 7개다. 금남로 주인공인 정충신이나 양촌 정엄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남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남도와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남도는 고려·조선시대 중요 유배지였다. 이 땅에 유배왔던 정도전, 조광조, 이광사, 정약용, 정약전 등을 소개하려는 이유다. 양림동에서 사랑을 펼친 미국 선교사 엘리자베스 쉐핑, 목포에서 공생원을 경영한 고아들의 어머니 일본인 타우치 치즈코(한국 이름 윤학자)도 다룰 예정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할머니 소송지원을 담당해준 광주 명예시민 1호 다카하시 선생 이야기도 하려 한다. 큰 벼슬을 얻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나눔을 실천한 일반인 이야기도 전하고 싶다. 예를 들면, 홍어 장수 홍순득이 표류된 후 필리핀에 다녀온 이야기나 흉년이 들자 곡식을 풀어 서창 군민을 구휼한 서창나루 뱃사공 박호련 이야기 등이 이에 해당된다.

▲현대인의 삶에 방향키가 될 만한 남도의 대표 인물이 있다면.

-하서 김인후 선생을 꼽고 싶다. 김인후 선생은 최종 관직이 옥과 현감이었지만 문묘(공자를 모시는 사당)에 배향돼 있다. 문묘는 공자와 함께 한국 유학자 18명을 모시고 있는데, 이중 유일한 호남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의 최종 관직이 영의정이나 좌의정, 우의정, 관찰사도 아닌 옥과 현감이라는 점이다. 얼마나 높은 관직에 올랐느냐, 돈을 많이 벌었는지가 기준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이 사람을 얼마나 본받고자 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조선시대 정조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도학(성리학), 문장, 절의 세 가지를 다 갖춘 사람은 하서 김인후밖에 없다. 저는 그중에서도 ‘절의’에 주목한다. 정의로운 삶. 우리 지역 정서와 맞닿은 부분이다.

▲저술활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발간한 저서를 소개해달라.

-지역의 역사를 연구한 지 30년이 넘어간다. 남도 곳곳을 찾아다니며 정리된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왔다. 남도 역사기행서 ‘남도의 기억을 걷다’에 가장 애착이 간다. 지역 문화와 역사 속 미래의 정신과 희망을 찾아내는 이야기다. 순천 죽내리 유적, 화순 고인돌, 해상왕 장보고, 견훤 등 선사 고대의 남도 역사에서 시작해 청자와 불교 개혁의 땅 고려시대 남도를 거쳐 조선시대와 한국 현대사까지 훑었다. 그 다음 펴낸 ‘광주의 기억을 걷다’는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조망하는 책이다. 구석기인들의 보금자리였던 치평동 유적부터 무등산이 낳은 영웅들 이야기까지 다뤘다. 광주읍성이 사라지고 태봉산이 헐린 후 경양방죽이 메워진 사건까지 광주 땅에 깃든 역사적 향기를 한데 담아냈다. 만주·연해주에서의 독립운동을 다룬 ‘다시, 독립의 기억을 걷다’는 10년 넘게 독립운동 현장을 발로 뛴 결과물이기도 하다.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 영웅들과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한 만주·연해주 동포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이 기억해야 할 시간과 사람들을 담아냈다. 이밖에도 ‘남도의 문화’, ‘고등학생을 위한 역사도서 길라잡이’, ‘신 한국통사’, ‘영산강 고대문화 마한’ 등 저서를 지속 발간해오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나주에서 태어나 군 생활을 제외하고는 광주를 떠나본 적이 없다. 지역민들과 함께 내 삶의 보금자리였던 광주와 전남, 남도인이 살았던 역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목표다. 광주매일신문을 비롯해 라디오 방송이나 강연 등을 통해 남도 역사를 일반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광주매일신문 지면에 남도인물 200명을 목표로 한 연재를 무사히 마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쉽지 않은 계획이지만 꼭 해내고 싶다. 독자 여러분들의 격려가 필요하다. 내 글은 기본적으로 대중을 지향하지만 자료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현재 몸담고 있는 남도역사연구원에는 약 200명의 회원이 있다. 지역사 역사강좌인 ‘남도역사학교’를 개설, 격주로 진행해오고 있는데 수강생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그만큼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역사에 대한 굶주림이 있다. 일반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이들이 필요로 한다면 이번 기획 시리즈의 결과물을 책으로 발간해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다. 올곧은 삶을 살아온 남도인을 조명함으로써 지금 현시대를 살고있는 남도인들이 자긍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따뜻한 삶,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이지 확인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모쪼록 이번 기획 시리즈가 ‘대중 역사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최명진 기자